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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이방인, 택배기사.

by 코나페소아

큰아들이 안양천변 빌라로 이사했다. 택배를 마치고 온 아내는 큰아들을 위한 반찬을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피곤할 텐데 반찬을 사가자라는 나와 막내아들의 만류에도 아내는 완고했다. 엄마의 손반찬을 좋아하는데 그럴 수 없다며 직접 만들고 준비한다.


삶의 고단함도 자식을 생각하는 모정을 이길 순 없나 보다. 휴일인 다음날 오전에 택배차 포리의 짐칸에 식탁과 의자 등을 싣고 집을 나섰다.

도착해서 보니 큰아들의 자취방이 보내온 사진보다 더 깨끗하고 아담했다. 이전에 살던 전셋집보다 넓고 아늑해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아직 방안에 널려진 짐들을 정리하고 식탁을 들여놓았다. 방청소를 하는 동안 옛날 부모님들이 해줬던 낯익은 행동들을 우리가 똑같이 답습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들이 새로 구매한 높이가 자동조절되는 책상을 자랑한다. 재택근무를 자주 하기에 서서도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 책상이었다. 세탁기, 정수기 등도 이리저리 품 팔아서 새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이렇게 집안에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으니 신혼살림 분위기가 났다.


문득, 사회 출발선상에서 착실히 준비 중인 이십 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견스러운 감정과 아련한 우리의 젊은 시절 추억들이 뒤엉켜 피워 올랐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상념에 젖어 차분해졌다. 아들은 우리의 젊은 시절모습으로, 우리는 부모님의 모습으로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돌아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말이야. 신혼시절부터 우리 둘만 이었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여자인, 아내가 종종 던지는 과거회상에 대한 가정법적인 질문들은 '정답'보다는 '위안'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임을 나는 이제는 너무 잘 안다.


좌충우돌하며 흘려보낸 이십 대 신혼시절과 삼사십 대의 시간들이 마냥 안타까워지면서 위안을 받고 싶어 하는 우리는 중년이었다.


우리가 살았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듯이

세월은 그렇게 내 나이를 더해만 가네.

누구라는 책임으로 살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훠이 훨훨훨 떠나보자 떠나가보자.

우리 젊은 날의 꿈들이 있는 그 시절 그곳으로.

<가요 '중년'의 가사 중에서 / 가수 박상민>



큰아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지혜롭게 생활해서 직장이 있는 서울로 진입하라는 당부를 하는데 아들이 사는 빌라단지 너머로 우뚝 선 아파트단지들이 시야로 그득하게 들어왔다.




1991년 추운 겨울에 상경해서 서울 금호동 산동네 월세 단칸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연탄불, 재래식 화장실의 단독주택에서의 자취생활은 난생처음이었다.


추운 겨울철 출근하기 위해 대문을 나서면 진귀한 광경이 벌어지곤 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들이 전봇대를 붙들고 여기저기 서 있었다. 밤새 얼어붙어 경사진 길을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좁은 골몰길을 따라 벌집처럼 형성된 단독들은 몇 년 후 재개발 열풍으로 모두 허물어져 사라졌다. 아내를 만나 프러포즈를 하던 골목길도, 당시 거금 들여 구입한 386 컴퓨터가 얼어붙어 작동이 안 될 만큼 추웠던 연탄불 꺼진 자취방도 모두 스러지듯 사라지고 아파트단지로 변해버렸다.


단독에서의 자취생활을 마치고 연립에서 신혼을 시작하고 그러다가 형편이 나아져 아파트로 이사해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살았다.


단독, 연립주택에서 아파트를 향한 인생의 거주행로는 세대를 떠나 똑같이 반복된다. 더 나은 삶의 경계는 존재했고 인생은 그것들을 무수히 넘나들고 있다.

언젠가 우연히 서울 상도동 재개발현장의 가장 높은 능선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도시풍경 속에서 확연히 드러난 삶의 경계를 발견했다.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이 확연한 경계가 있었고 단독주택들은 파멸되어가며 새로운 아파트로의 재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폐쇄된 경계이다. 칸트의 주장처럼 '비틀어진 목재'와 같은 인간들은 끊임없이 '빗장공동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도시는 아파트로의 편중된 삶을 부추기며 비틀려만 갔다.

빗장공동체(gated community, 출입구가 있고 차량과 보행자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주택단지로 주로 중상층 이상이 거주한다.)


하지만 진정한 도시의 의미는 다양한 삶의 공간을 제공해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풍부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도시는 상이한 종류의 인간들로 구성된다. 비슷한 인간들만 있으면 도시가 존재할 수 없다."라고 썼다. 사람들이란 따로 있을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의식이 다층화되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는 도시 내 다양한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택배를 한다.


단독과 연립이 있는 지번대에 들어서면 담장 너머 고개를 내민 고추나무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네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바쁜 배송 중이지만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항상 첫배송을 위해 차를 대고 뒷문을 열 때면 "오늘은 짐이 많은가 보네." 하며 말을 붙이는 분도 계신다.


요즘은 공실이 된 상가에 인도네시아 식당도 들어서고 '줄리아' 러시아 여사장님이 운영하는 한식당 등 다양한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도 제법 들어섰다. 역에서 가까운 모퉁이 상가의 제법 큰 국밥집이 폐업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이쁜 카페 겸 빵집이 들어섰다.


아내가 아파트에서 배송을 하는데 뒤에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택배차를 좋아하던 꼬마아이의 엄마였다. 우리가 배송하러 갔다 올 동안 줄곧 택배차 곁을 떠나지 않던 호기심 많은 남자아이가 우리는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이것저것 만지게 해 주니 마냥 좋아했다.


"택배기사 아저씨." 등 뒤로 가느다란 남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초등학교 남자아이가 나를 부른다. 다가가니 나뭇가지 사이에 신발주머니가 대롱대롱 걸려있다. 너무 높아 고민하다가 들고 다니던 대차로 건드려 떨어뜨리니 좋아라고 인사하고 달려가는 뒷모습이 참 귀엽다.


우리는 서로 잘 알지 못하지만 너무 깊지도 너무 얕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접촉을 늘려가는 그냥 옆에 있는 친한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비틀린 삶의 경계를 희석시키는 것은 진심으로 알고 싶은 마음은 없으면서도 이웃이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이 같은 <소소한 예절> 속에 해답이 있다. 이런 행위는 균열된 상태를 복구하기 위해, 사회적 연결을 재구축하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느끼는 진정한 감정을 숨긴다.


소소한 예절 속에서 너무 깊지도 너무 얕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접촉을 늘려가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그곳이 아파트든 단독, 연립이든 상관없이 삶의 정체성과 정겨움을 발견해 간다.


도시는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거주양식에서 물리적 환경이 유래한다.

어떤 동네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이다. <짓기와 거주하기 / 리처드 세넷>





나는 아내를 이렇게 위로했다.

우리 둘만 지내는 것 보다도, 당신과 아이들이 함께 한 지금까지의 삶이 더 좋다고 말했다. 힘겹고 쓰라린 아픔도 많았지만 함께 무수히 부대끼며 여기까지 온 여정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이곳저곳에 펼쳐진 삶의 경계에 구속받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마음을 두는 곳이 가장 살기 좋고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아파트이든 숲 속 자그마한 오두막이든 말이다. 나이가 이십이든 오십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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