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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Mar 24. 2024

돈감정, 그리고 돈으로 살수 없는 것.

돈에 얽힌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다.

왕년에는 꽤나 유명했지만 이젠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노년의 트로트 가수가 내뱉은 한마디가 가슴에 콕 하니 박힌다.

 

젊어서는 사랑에 살고 늙어서는 돈으로 산다.


돈이 없으면 단 한걸음도 쉽게 옮기기 힘든 이다. 인생은 돈이 있고 없음으로 연스레 좌우로 나뉜다. 돈이 펼쳐주는 달콤한 이상과 그것이 없는 차디찬 현실 사이에 난 커다란 렁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노년이 된 인생은 이내 서럽고 고달프기만 하다.

    

그래서 돈에는 사람들의 애증과 염원과 같은 정들이 흠씬 묻어난다.



언젠가부터 까대기 시간이면 투박하게 포장된 허연 비닐 뭉치들이 바닥에 쌓였다. 바다를 건너온 황사처럼 전역을 뒤덮은 중국대륙의 알리와 테무의 초저가 상품들이다. 테무의 모토처럼 이들 초저가 상품들은 너도나도 억만장자가 되어 쇼핑하고 싶은 사람들의 허세들 여지없이 자극한다.

    


오백 원, 천 원짜리 알리, 테무의 초저가 공세 앞에 국내 이커머스업계는 초비상이다. 저렴한 가격 앞에 애국심도, 브랜드충성심도, 선호도도 무용지물이다. 부자나 가난한 이들이나 가성비에는 공통적으로 열광한다는 점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고 교묘하고 영리하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택배기사들의 소통카페에 올라온 댓글이 의미심장했다.


결론은 한국은 이제 쿠팡과 알리로 인해 단가 경쟁체제가 되어버렸고 택배업계는 좀 길게 내다보면 현재 처한 최저단가에서 더 밑으로 갈지도 모르겠네요. 법으로 막아 놓지 않는 한 말이에요.


택배기사들은 중국발 알리와 테무, 쉬인, 틱톡샵 등 새로운 초저가 공세의 플랫폼 뒤에는 혹독한 착취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리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면 노동력이 값싸지고 노동력이 값싸지면 상품가격도 떨어진다.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상품과 노동력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숙명며 비판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지적대로 상품가격이 저렴해지고 배송속도가 빨라질수록 택배기사들이 받는 단가는 점점 더 내려가고 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패하지 않는 돈은 이윤을 낳는다. 그 이윤을 위해 종업원은 죽어라 일해야 했고 사장은 천연효모 빵이 아닌데도 그렇다고 소비자를 속였다.


차곡히 쌓여가는 금융자본(돈)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더 많이 가혹하게 착취한다. 유튜브마다 월 천만 원씩 번다는 택배기사들의 영상이 자랑스레 떠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많이 수록 더 많이 착취를 당한다는 사실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낮아지는 저단가의 상황에서는 당일배송, 새벽배송 등 업무강도는 점점 강화되고 배송시간은 늘어나 연중무휴, 24시간 노동하는 체계로 스스로를  수밖에 없다.

   

가족들과 함께 택배를 하며 뼈저리게 경험했다. 월수입이 천만 원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택배 이외에는 일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 18리터의 적당한 수액을 채취당하는 고로쇠나무가 아니라 껍질 채 말갛게 벗겨지도록 착취당하는 느낌과 함께 생명의 위협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돈만 많이 벌린다면 어떤 힘겨운 조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긴다. 돈의 잠식효과에 빠져버렸다. 돈이 삶의 여유, 흥미, 관심, 의무감, 헌신성 등을 밀어내고 그 가치를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돈 이외에 행동할 어떠한 동기의식도 상실해 버린 듯하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으로 모든 것을 거래하는 시장지상주의는 삶이 지닌 고유한 가치들을 변질시킨다고 지적한다. 시장 속에 인간의 탐욕을 규제하는 수단이 없는 한 위기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돈으로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 될수록 오로지 부유한지 가난한지만 더욱 중요해진다고 경고했다.


돈이 추구하는 지나친 효율성보다는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선명하게 존재했다.

 



홀로 사는 60대 중반인 B형님은 늘 깔끔하다. 험한 택배일을 하지만 청바지나 산뜻한 옷차림으로 일한다. 두 자녀가 학창 시절일 때는 교복을 늘 다림질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우리를 보면 늘 금실이 왜 이리 좋냐며 부러워하시곤 했다. 봄이 되니 이 한결 더 허전해진 것 같다는 형님은 참 정이 많고 정이 고픈 그런 사람이었다.

          

한동안 소식도 없이 멀리 떨어져 지내던 형님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혼하는 자식을 위해 노후를 위해 틈틈이 모아둔 자금을 고심 끝에 곁에 있는 딸자식 몰래 보내줬다. 이젠 기초수급자라며 웃는 형님을 보면서 노후의 불안함 보다 더 앞서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돈에 고스란히 묻어 있음을 느꼈다.


형님의 돈에는 그렇게 자식을 향한 살아있는 따스한 온기와 고뇌 느껴졌다.

 

사업실패 후 힘겨웠던 시절에 나는 서울로 왕복 4시간의 지하철 출퇴근을 했다. 추운 겨울 아내는 외식도 한번 제대로 하기 힘든 형편이었는데 백화점에서 두툼한 50만 원짜리 거위파커를 사 왔다. 나를 입히고는 미소를 지으며 좋아하는 아내를 보다가 시선을 떨군 내 눈에 다 헤어진 아내의 운동화가 들어왔다. 두툼한 파커를 입고 출근하는 동안 아내의 진한 사랑을 느끼며 내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 지를, 그 이유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에게 돈이란 아내와 가족의 행복을 의미했다.


힙합에 빠진 막내아들이 학교에서 수업료 20만 원을 장학금으로 받아왔다. 선생님을 도와 힙합가사로 수업시간에 도움을 줬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담임선생님이 장학생으로 추천을 했다. 수업료를 어떻게 마련하나 고민하던 엄마에게 아들은 20만 원을 불쑥 내밀었다.


그런 아들이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저금해서 천만 원을 만들어서 제대했다. 그리고는 마침 아파트를 덜컥 계약하고 잔금을 못 맞춰서 고심하던 우리에게 기꺼이 통장을 내밀었다.


아들에게는 돈이란 부모님과 가족을 책임지는 것과 자신의 성공을 의미했다.


<Mindset> 힙합래퍼인 아들이 돈에 담긴 가족에 대한 심정을 담은 자작랩.

https://youtu.be/0KSmyKfVcL4?si=1QgAgNLGOHPQWEbI




돈이란 쌓아놓고 과시하기보다는 부패되고 사라지는 게 옳은 것 같다. 우리의 삶 속에서 소중한 것들이 잘 성장하도록 거름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늘 통장계좌가 비워지면 불안해하고 불행해한다. 

 

통장계좌를 채웠던 돈들이 거름처럼 삭아서 빠져나가 가족들의 감정계좌를 가득하게 채워나간다고 생각하니 덜 허탈해진다. 더 이상 통장잔고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간밤에 예사롭지 않은 꿈을 꿨다며 복권을 샀다. 막내아들이 비트코인이 폭등했다며 다시 거래계좌를 열었다. 나는 아내와 아들이 돈을 향한 바람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전혀 속물스럽지도 저속해 보이지 않고 말릴 생각도 없다.


우리는 돈이 없는 현실이라 인생역전을 바라는 심정으로 복권을 사고 비트코인을 샀지만 이익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일주일간 억만장자처럼 가족의 소원을 들어주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돈을 대하고 쓰는 방식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고 가정을 바꾸는 게 아닐까 싶다.

오직 우리 가족이, 소중한 이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바람만이 돈 속 고이 담겨졌으면 다.


매일 돈을 쓰는 법을 바꿔보는 것도 경제를 부패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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