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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Aug 01. 2024

No Surrender, 개미들의 유쾌한 반란 020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무라카미 하루키>

사람들은 거대한 '개미'라는 름을 붙여 '개미'태풍이라 불렀다.

'개미'라는 이름은 태풍의 무시무시한 위용조차 통속적으로  위협적이고 우습고 하챦게 여기게 만든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대변해서 게 하는 된 것 그리 날려주는 통쾌함을 안겨줬으면 지만, 삶이 늘 그렇듯 태풍'개미'는 이 땅 위에 '찜통더위'와 폭포수 같은 '소낙비' 한가득 긴 채 용히 사라져 버렸다.


무더운 휴일 아침 느지막이 샤워를 했다.

샤워부스 안에서 '적색'과 '파란색'사이를 오가는 물온도 레버를 조작하며 가늘고 잔잔히 와닿는 물줄기의 감촉을 음미하며 한없이 여유를 다.


오늘만큼은 시간에 쫏겨 내 육신을 급하게 닦달할 이유도, 마음속 긴장의 끈을 옥죄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나에게 무한한 자유를 아낌없이 허용할 뿐이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달콤함이란 이런 거구나.


개미처럼 작고 평범한 인생에게 

'적색(보수, 우파)'과 '푸른색(진보, 좌파)'의 이념이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샤워부스 안에서 적당한 물온도를 맞추기  물온도 조작레버가 왔다 갔다 하는 구간 같은 것일 뿐이다.


거친 삶의 량함 속에서 '개미' 작은 인생들에게 '이념'과 '신념'이라는 것은 한낱 사치스러운 '아집'이고 서로에게 '차별'과 '상처'만을 남기는 잔혹한 채찍과도 같은 '흉기' 불과함 아온 지난 월이 닫게 해 줬다. 


'개미'인생에게는 그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행동만이, 또 그 시점에 충실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삶을 위한 유일한 '행동강령'이자 '이념'다. 삶을 살아내는 것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다.


개미 같은 존재들이 충실히 삶을 살아내려 목소리를 드러내면 세상은 '정치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미'처럼 작은 계층들은 숙명적으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폐쇄된 상황에 살아야 한다.


최근 몇 년간 21명 이상의 택배기사들이 스다.

그들가슴 아픈  맞바꾼 배기사들의 공휴일이 최근 들어 불안하다.

  

당일배송, 총알배송, 로켓배송 등으로 지는 택배시장의 '속도전' 앞에서 택배기사들의 눈곱 같은  '바람 앞의 촛불'신세 같다.


작은 것들의 '여유' 늘 이렇게 커다란 야수들 앞에서  협받고 위태롭기만 하다. 이럴 때면 '세상과 척지지 말고 맞춰 살아야지' 하는 작은 것들 특유의 체념과 함께 황량하고도 우 연의 동굴 속으로 움츠려 들 때  어디선가 한 무리의 외침이 들린다.


"저항하라(No Surrender)"

그리고는 기타와 드럼을 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노래와 춤판을 벌다.


'브루스 스프링틴(Bruce Springteen)'

그가 부르는 노래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사람들은 이처럼 열광하며 풍처럼 "떼창" 따라 부르는 걸까.


우연히 본 유튜브의 동영상에서 그의 노래 <No Surrender>를 수많은 사람들이 기타와 드럼을 치며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무슨 종교집회도 아닌데 환호하고 즐거워하며 함께 노래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로움이 느껴졌다.

 

<No Surrender>라는 곡은 "부자가 되어 멋지게 살라."는 아메리카 드림의 허상에 굴복하지 말고 싸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80년대 초반 레이건 정부의 보수적인 교육정책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고리타분한 학교교육보다도 3분짜리 노래 속에 몇 배의 진리가 담겨있다며 경쟁을 부추기는 성공지상주의를 반박한다.


"성공지상주의에 저항하라."며 노래하는 '브루스 브링스틴'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함께 "굴복하지 말자"라고 화답해 외치며 노래 부른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은 처절하지도 비장하지도 않다. 모진 삶에 대한 어떤 살기나 증오도 걷어낸 채 살아있다는 생기와 활력이 넘치고 흥겨움과 환희만이 가득한 채 서로 나가 되는 축제의 장이었다.


마치 200여 년 전 '소로우'가 상상하고 꿈꾸던 거대한 야수에게 저항하는 작은 것들의 합에 대한 현신을 보는 듯하다.   


Well, we bursted out of class

Had to get away from those fools

We learned more from a 3 minute record

Than we ever learned in school


그래, 우린 땡땡이를 쳤지

그 바보들로부터 멀어져야 했어

학교에서 배운 모든 걸 합친 것보다

우린 삼분짜리 레코드판에서 더 많은 걸 배웠지



Tonight I hear the neighborhood drummer sound

I can feel my heart begin to pound

You say you're tired and you just want to close your eyes

And follow your dreams down


오늘밤 이웃의 드럼소리에

내 심장이 뛰는 걸 느끼네

그대는 피곤하다 말하며 그저 눈을 감은 채

꿈을 좇고 싶다 말하지

Well, we made a promise we swore we'd always remember

No retreat, baby, no surrender

Like soldiers in the winter's night

With a vow to defend

No retreat, baby, no surrender


그래, 우린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

후퇴도, 항복도 하지 않겠다고

사수를 맹세한 겨울밤의 병사들처럼

후퇴도, 항복도 하지 마세나, 그대여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수많은 청중들을 '떼창'하게 만드는 '브루스'가 경이롭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는 관심 있게 '브루스'와 의 팬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현상을 면밀히 살펴보고 그만의 예리한 평론을 한다.


그에 따르면 '브루스'는 미국의 블루칼라 계급이 가진 활이며, 심정이며, 꿈이며, 절망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가수라는 것이다. 그는 그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고 노래한다.


폐쇄된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이 끼던 '황량함'을 누구보다 잘 대변해서 표현했다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 같은 노래를 듣는 청중들은 반응하며 거대한 '이야기의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침묵하는 다수'의 심정을 대변해 노래하며 그들의 존재를 러내며 솔직하고 겸허하게 우리 속에 있는 황량한 마음을 폭로했다. '브루스 스프링틴'의 음악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고 그 힘을 발휘했다.


공감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적의'와 '이기심'은 사라지고 오직 '친밀감'과 함께하는 '희열'만이 분출된다.

그들의 심정을 노래하는 '브루스 스프링틴'을 대중들은 그들의 '보스(Boss)'로 삼았다.


억압받으며 '침묵하는 다수'인 개미인생을 대변하는 이는 아무도 없고 그저 정치색을 입히고 저속하다며 세상은 탄압해도 더 이상 황량한 폐쇄된 동굴 속으로 움츠릴 필요가 없다.

   

어둠을 머금은 코발트블루빛 하늘을 바라보며 이른 새벽이면 일어나 푸르게 도색된 택배차를 타고 아내랑 택배 하러 나간다.


붉은 신호등과 붉게 적힌 주유소 가격요금, 그리고 꼬리를 문 앞차의 붉은색 미등 행렬 속에 파묻혀 집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삶의 의미는 붉음과 푸르름, 이 모든 게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채 살벌한 이념의 철조망 너머에서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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