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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Aug 25. 2024

굴뚝

일하는 사람들은 늘 '스카이블루 Skyblue'를 꿈꾼다.

그는 1톤 화물차 에서 배를 피우고 있었다.


택배 하러 나가는 이른 아침이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번은 마주치는 년남자다. 회색 티셔츠와 칠부 반바지, 그리고 까실한 수염을 한 그는 늘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1톤 화물차들이 주차된 상가주차장을 향해 지하층으로 향하는 우리보다 지상층 로비에서 먼저 내리곤 다.


살아가기 위해 일한다는 의미에는 원초적으로 가진 모든 에너지가 고갈될 정도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수고스러운 고통이 담겨 있다. 초원의 맹수 사자의 사냥 성공률이 25%, 바다의 포식자 상어도 20% 남짓이라고 한다. 죽기 살기로 사냥감을 덮쳐도 네다섯 번 시도해서 겨우 한번 성공할 수 있다는 야생세계 험난한 사냥 성공 확률이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화물용도'라는 의미에는 먹고사는 생계수단이라는 뜻과 함께 어떤 힘겨운 상황도 버텨내려는 '절박함'이 씬 풍겨난다.

     

자연스레 '화물용'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차량에게선  많은 것들이 과감하게 생략된다. 눈길을 끄는 세련된 디자인, 안전성, 정숙성, 각종 편의기능을 담고 있는 화려한 대시보드 등은 과감히 축소되거나 생략되어도 '화물차'라서 가능하다. 그래서 화물차는 사람들의 시선 밖에 존재한다.

 

택배를 하기 전에는 1톤 화물차(포터와 봉고 같은 트럭)라는 존재조차 몰랐다. 하지만 자동차회사들이 란하게 광고를 하는 '그랜저'나 '소나타'보다 더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 차량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베스트셀러 차량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은 주변의 '푸대접'에 또 한 번 놀랐다.


포터 등 화물차는 같은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만 괄시대상이다. 한 가구 1주차 또는 2주차가 허용되는 상황에서도 차량높이 때문에 지하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지상주차 자리마저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입주자대표회의 등에 '화물차 주차권리'를 건의해도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파트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1톤 화물차들은 퇴근해도 마땅히 쉴 자리 찾기가 여의치 않다.


그저 1톤 화물차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1톤이 초과되어 실려도, 수십만 킬로를 운행해도 잘 버텨내는 '내구성'과 '단단함'이다. 덜 세련되고, 안전성이 떨어지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해도, 그렇게 먹고살아내려는 사람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무대조명 뒤 베스트셀러 차량이 되어버린 1톤 화물차를 보노라면 괜히 짠해진다. 화물차나 노동자나 '푸대접'과 '무관심'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초인적인 인내로 버티고 버텨내야 하는 숙명을 공통적으로 지녔다는 닮은 꼴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이제 '화이트칼라(사무, 연구직)'와 '블루칼라(생산, 노동직)'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진 황 속으로 들어섰다. 3040에는 대기업회사원, 5060에는 치킨집사장으로 대변되는 '화이트칼라'로 은퇴해서 죽을 때까지 '블루칼라'로 살아야 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졌다. 자연스레 돈을 버는 직업에 대한 편견 담긴 '색깔론'은 더 이상 무의미해져 버렸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대로다.


블루와 화이트가 섞이면 무슨 색상이 될까? 색상이란 배합하는 사람의 의중에 따라 옅은 '스카이블루 skyblue'에서부터 짙은 '쿨그레이 coolgrey'까지 다양하게 표현된다.

     

택배를 해보니 '온열질환'에 걸리거나 '코로나'에 걸려도 병가를 내거나 해서 몸조리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도 없다.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구역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최저생계비나 해고등 정당한 근로조건이 전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생계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늘 상존한다.

    

고용주들은 이런 노동자들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저열하게 돈을 번다. '특수고용직'이라는 것은 고용주 편의중심 위주로 교묘하게 설계된 신분이다. 택배를 비롯한 물류업은 철저하게 인건비를 갉아먹어야 흑자를 내는 태생적 구조를 지녔고,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다.


상품에 대한 최신 설비와 획기적인 물류유통시스템에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할지언정 그 속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한 최소한의 냉난방시설 설치조차 뒷전인 게 택배노동 현실이기 때문이다.

딱 '생물법(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과 '재난안전법' 등 법에서 정한 규정과 범위 수준에서 노동자를 처우하는 시늉만 낼뿐이다.

     

요즘 택배시장 선두 1,2위 업체가 다투듯이 택배기사의 주 5일 근무제를 내년부터 실시하겠다며 대대적으로 언론에 홍보하고 있다. 만일 그대로야 된다면 '스카이블루 skyblue'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며,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게 되는 최적의 노동환경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택배업체들의 고용악습이나 지난 5년간 택배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겪어보니 그리 망적인 '스카이 블루'같은 상황 전혀 기대되지 않고 실소만 나온다. 언론을 통해 그들이 대대적으로 보하는 택배기사 '주 5일제'는 연중무휴로 택배노동을 강행시키려는 속셈을 감겉포장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택배기사들은 알아차리고 벌써부터 고심이 다.


망적인 '스카이블루'를 원하는데 자꾸만 노동실은 울한 '쿨그레이 coolgrey'로 려고만 한다. 배송하다가 많은 택배기사들이 쓰러진 불과 4년 전 상황보다 더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변하려고만 한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도 참 많은 1톤 화물차량들이 있었다. 다들 어디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살아가는 걸까. 택배차를 타고 상가주차장을 나서는데 화물차에 오르지 않은 채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잿빛 새벽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담배를 빨았다가 내뱉고 있었다. 일터로 향하기 전,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차량 곁에서  담배연기를 기나길게 뿜어 있었다.


문득 90년대 서울 을지로 동부화재(현재 DB생명) 빌딩 사거리의 '쌍용양회'의 짙은 잿빛사옥이 생각난다. 출근시간 때면 외부에 드러난 잿빛 계단과 난간에 새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회사원들이 줄줄이 나와 담배를 피워댔다. 근무 시작하기 전 삼삼오오 새하얗게 잿빛 난간에 들러붙어 담배를 피우며 근무시작을 준비하던 경은 참 인상적이었. 여의도 증권가도 출근시간 때 풍경은 역시 별반 다르지 다. 높은 고층건물에서 증권맨들이 로비에서 쏟아져 나와 외부 휴게실 담배재떨이 주변으로 벌떼같이 모여들어 담배를 피워댔다.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이들도 있지만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을 한다는 것은 거움보다는  견디고 버텨야 하는 것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에서 뿜어내는 샐러리맨과 노동자들의  담배연기 속에는 고달픔, 불안, 힘겨움의 감정도 함께 진하게 묻다.


굴뚝이 생다. 대한 굴뚝이. 400미터 이상 높이 솟아오른 굴뚝은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며 철강, 화학제품과 전력을 생산하다가 남은 에너지의 잔재들인 거대한 매 다. '굴뚝산업'은 하나같이 거대한 굴뚝을 지닌 철강, 자동차, 화학, 전력 등과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의미한다. 산업혁명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사람들을 먹여 살린 대부분을 감당해 주던 일터였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연기를 내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부를 창출하는 첨단산업, 신산업들이 등장하면 '굴뚝산업'이란 비냥거림과 함께 기존 제조업은 구세대 유물취급을 받게 된다. 신기술(인터넷, 스마트 폰, 생성형 AI, 자율주행차량, 로봇 등)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를 가지게 만들었다. 


땀냄새와 겨움이 진동하던 일터를 뒤로한 채 '디지털 유목민'을 꿈꾸며 사람들은 성공과 삶의 여유를 누리는 망을 가지게 된. 신기술은 혁신을 거듭하며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사람 모든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이 대화되는 흥분된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굴뚝산업'이 아닌 '첨단산업'에게 기대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신기술과 첨단산업은 과적으로 우리의 젊은 세대를 부모세대보다 더 나은 생활환경 속에 살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디지털세계 속의 가상의 경제와 개인공간 속으로 가두어 버렸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은 "기술발전은 아이폰과 소셜미디어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들 중 인간조건의 근본적인 개선을 가져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다.


신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과 기업들은 더 이상 '리스크'를 감당하려 하지 않고 '생성형 AI'와 '로봇'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며 편하게 살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신기술은 더 이상 대중의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하며 버블을 터트리며 경기침체를 불러오는 암울미래의 불안만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거품이 터지는 시 되어야  비로소 사람들은 편하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다는 사실 깨닫게 된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가치' 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현실은 직접 뛰어들어 땀 흘리며 현재를 경험해야이해하고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  자신에게 집중하며 현실 속 본업에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유이다.

 

우리가 살면서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돈을 잃는 것보다 기회를 잃는 것이다. 여기서 기회란 "삶의 통제권을 찾을 기회"를 의미한다. 땀냄새가 나고 괄시의 대상인 블루칼라 노동자 처지라도 내 삶의 통제권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힘겨워도 견뎌낼 분한 가치가 있고 의미를 제공받은 셈이다.


진리란 논리로써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흙 한 무더기 속에서 오렌지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오렌지 나무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 흙더미가 진리인 것이다. <이상, 생 텍쥐페리의 우연한 여행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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