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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Aug 15. 2024

택배 없는 날

당신의 힘을 잘못된 것에 쓰지 마세요.

택배 없는 날 아침이다. 오늘부터 이틀간 휴일이다.

휴일이지만 새벽이면 습관처럼 눈이 떠졌다. 곁의 아내는 전날까지 힘겨웠던 노동의 후유증으로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두운 거실로 나와 목을 축인 나는 가만히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틀연휴를 앞둔 전날 화요일은 가장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날이다. 설상가상으로 간선차가 한 시간 정도 지연되고, 낮기온도 최고 36도까지 치솟았다. 온열질환 증상을 생애 처음으로 겪어봤다. 배송하던 중간에 갑자기 심한 두통이 나더니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엘리베이터에서 거울 통해 본 내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렇게 야외에서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거구나. 이제 나도 '온열'세례 받았으니 진정한 '노동자'로 거듭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아들이 염려할까 봐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그나마 탕용기 등 상가나 물류센터 등의 무겁고 큰 짐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많은 배송량과 찌는 무더위에 마지막 배송지에서 우리는 거의 기진맥진해 버렸다.


해마다 날씨마저 총알과 로켓이 난무하는 택배시장처럼 점점 더 잔인하고 살벌해져 가는 듯하다.

2023년 택배이용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연간 택배물동량이 41억 2,300만 건이라고 한다. 1인당 80건, 가구당 189건의 택배를 이용했다. 한가정이틀에 한번 꼴로 택배를 이용하는 셈이다. 택배 물동량은 최근 5년간 매년 7~10%씩 증가추세다.


택배물량이 늘어갈수록 택배기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져 간다. 코로나 시기인 2020년, 2021년 기간 동안 21명 이상의 택배기사들이 배송 중에 쓰러졌다. 부랴부랴 정부가 개입해서 2020년부터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선포하며 열악한 택배노동 현실로 쏟아지는 비판여론들무마시키려 했다. 그래서 나는 택배 없는 날이면 피냄새가 현충일이나 광복절같은 공휴일처럼 여겨진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동료 택배기사들의 희생이 생각나기 때문이. 그리고 나도 언제든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거운 각은 휴일이라는 즐거움을 반감다.


황금만능주의와 기업이익을 세우는 황금자본주의의 논리 앞에 그 어떠한 것들, 심지어 사람의 생명조차가치를 상실해 버린 듯하다. 나날이 택배회사들의 24시간 배송과 연중무휴 배송을 위한 노동력착취를 당연시하는 기업의 생존 논리만이 그 세를 . 2025년부터 일반택배회사들도 쿠팡처럼 휴일배송, 새벽배송 등을 실시하겠다고 여론몰이식 언론플레이를 진행 중이다. 

   

언제나 밀려오는 힘센 파도 앞의 작은 것들은 모래성처럼 무기력하다. 작고 약한 존재들을 위한 영원한 것은 없다. 약속들은 번복되고 허물어진다.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작은 존재들의 시도는 허고 사소한 욕망에 불과하다. 다만 기껏 쌓인 생의 흔적들이 파도에 겨가듯 자취도 없이 사라지려 하는 현실이 못 타깝고 서글플 따름이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 8월 13일 한국통합물류협회,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 등 주요 택배사와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정하고 전체 택배 종사자가 쉴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선언에는 택배기사의 충분한 휴식시간 보장을 위해 심야시간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으며, 택배기사의 질병·경조사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이는 국내 택배 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최초로 시행된 것으로,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급증한 업무 부담량을 줄이고 과도한 근로시간 동안 일하는 택배 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상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인용>

   

아내가 말했다. 간밤에 내가 악몽을 꾸었는지 누군 욕하며 싸웠다다.

아직도 내 속 깊숙한 내면에는 '코맥 맥카시'가 쓴 소설 <더 로드>의 주인공 남자처럼 금방이라도 격발 할 듯이 조준된 권총을 움켜쥐고 황폐하고 동정 없는 세상을 향해 겨누고 는 적개심과 분노의 응어리 아직도 존재하는가 보다.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 과거의 상처는 마치 햇볕에 달궈진 모래처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쉽게 식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과거에 발목을 잡히고, 나아가지 못한 채 늘 그 자리를 맴돌 뿐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온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따스온기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불덩이가 될 수도 있었다. 사람 그렇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오고 있었다.


끙끙 앓는 아내의 목에 파스를 붙여주던 나는  힘들지 않냐며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었다. 아내는 사람보다 차라리 날씨와 싸우며 사는  삶이 히려 더 마음 편하고 홀가분할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리는 어쩌면 삶이라는 사막을 헤치며 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아니라 비바람, 폭염, 추위 등 하늘과 싸우듯 상대하며 그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사막 속을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고비가 찾아와, 마치 폭염 속에서 갑자기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앞에 서야 할 때면 여지없이 우리는 간신히 버티거나,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생존하는 법과, 물 한 방울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열병과 갈증을 겪으면서도 참고 속해서 움직이는 인내를 배우고 있었다.


다가선 상황들이 롤러코스터 같아서, 갑자기 추워졌다가 갑자기 더워졌다가 하기에, 우리는 항상 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법을 자연스레 체야 했다. 사람과 상황에 눈길을 주지 않고 그저 우리가 상대할 하늘과 미래를 향해 눈길을 주고 나가는 지혜를 어렵지만 정직하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절망과 암담함이 엄습할 때마다 곁에 있는 서로를 부여 쥐면서 이라는 존재가치를 나날이 새롭게 깨달아 가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열병을 앓고 견디며 내 속의 욕망의 속도를 더디게 하는 법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세상을, 사람들을 평정심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이 이제는 수긍이 되면서 가슴이 열린.


오늘은 레퍼 뮤지션인 아들의 생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빵집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아들을 위한 케이크를 사러 집 나섰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편한 차림으로 인근 빵집을 향하는데도 벌써 휴가기분이 물씬 나면서 흥겨움이 생겨났다. 누구는 멀리 부산 광안리로, 유명한 핫한 여행지로 향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자유'와 '여유로움'만으로 충분했다.


들과 함께 즐겨가던 갈빗집에 들렀다. 남아시아 여성직원이 맞이했다. 주문을 받은 그녀는 익숙하고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갈비를 먹기 좋게 구워주었다. 모처럼 한 상 차려서 나오는 음식들을 즐기는 동안 우리는 전날의  말갛게 잊어버렸다. 서로 음식을 누며 전날의 고가벼운 '농담'처럼 웃음의 소재가 되어버렸다. 천장이 높고 시원한 카페에서 한껏 여유가 묻어난 빵과 음료로 우리만의 소박한 파티를 마무리했다.

 

사람은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 야자수 그늘 아래 앉아 쉬는 것처럼,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리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휴식의 달콤함을 마음껏 음미하고 즐겼다.


'아일리쉬 Billie Eilish'의 'Your power'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녀는 세상의 불균형한 관계와 가스라이팅을 지적하며 래했다. '너의 힘을 잘못된 것에 쓰지 말라'는 그녀의 가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아들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자신의 음악세계에 빠지고 아내는 거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했다.

나는 가만히 '클레어 키건'의 얇은 소을 펼쳐 들었다.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p121> 


그렇게 우리의 짧고도 사소한 휴일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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