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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Jul 14. 2024

슈퍼마켓 플라워즈

Supermarket Flowers

삶이라는 현실은 늘 제멋대로.


'생택쥐베리'는 일생동안 푸른  경했지만 항공기 조종술은 빈약했고 결국 창공의 이슬로 사라지, 


인생의 '부조리' 대해 렬하게 항하던 '까뮈'일생 작품시리즈 마무리를 앞두고 허망한 교통사고로 사십 대의 젊은 나이에 부조 요절하고 만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돈 많은 귀족의 자녀를 가르치는 평범한 가정교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소로우'는 영감 어린 월든호수가를 나와서 생업으로 측량기사 등 노동을 하다가 폐결핵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톨스토이'와 '루소'는 평생을 빚쟁이와 비난자들에게 시달리며 글을 써야만 했다.


인생이란 눈부신 필력을 지닌 작가들 눈앞에서도 결코 수려하게 펼쳐지지 않았다.

 

잘 다듬어지고 잘 짜인 글로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는 이라도 그 책일 뿐 두서없이 들이닥치는 우리네  앞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자들의 시선을 삶의 냉혹한 현실 찌감치 돌리게  주제를 안겨주 그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실을 살아내는 고통을 망각하게 주는 것은 아닐까 싶어 진다. 


작가 스스로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삶의 매서운 고통에서 수의 독자들과 함께 멀리 벗어날 수 있사실에서 다시금 글을  위로와 희열을 맛보는 것이리라.


결론적으로 고 싶은 은 찬란한 작가들의 삶의 행서 드러나듯이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의 현실이란 참 많이 허망하고 만만치 않게 고통스럽다"라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단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세상을 살아내려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풀러 내고 작스레 택배노동자가 되어버렸다. 나의 선택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생존을 위한 <강제된 삶>을 산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현실의 파고에 맞서는 동안에는 아무런 느낌이나, 감흥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살아야겠고 적응하려는 생존본능만이 긴박하게 작동할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통이 느껴져 왔다.

 

강제된 삶의 무의미성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가 수시로 쓰리고 아프게 다가왔다. "인간들은 고통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는 체의 말 그대로였다.

 

돈이 전 것 같은 세상을 살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삶이 모질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의미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비바람, 폭설과 땡볕을 가르며 가족과 함께 무거운 택배를 나르면서 점점 능숙한 택배노동자로 단련되어 갔지만 나날이 더 불합리해지는 노동환경과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체념의 감정이 교차하는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 낼 수 있충분한 이유가  수는 없었다.


그저 의미 없이 눈을 뜨고 눈을 감는 나날의 연속점점 더 삶의 생기를 죽은 나무토막처럼 피폐하게 만들이내 죽음보다 더 깊은 의 수렁 속으로 빠지게만 만들 뿐이다.

 

폭우에도 배송하던 40대 여성 택배노동자가 류에 목숨을 잃었다. 밤을 낮 삼아 배송하던 젊은 삼십 대 택배기사가 쓰러졌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산비탈 바위 에서 피어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들꽃들과도 같은 인생들이 이 땅에 왔다가 사라지는 의미란 도대체 무엇일까.


'빅터 프랭클'은  땅 위에 살아가는 것들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존한 그는 "절대적인 '의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완전한 '실패'를 영웅적인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라고 확신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거기서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이 내 삶을 힘들게 할지라도 내 삶은 의미가 있다. 절대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내 삶은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절대적인 '믿음'이다.


삶에 대한 절대적인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살아갈 수 있노라고 그가 말하는 것이다.


나뭇가지가 나무 전체를 이해할 수 없듯이 사람은 인생 전체의 의미를 모두 다 파악해 낼 수는  없다. 인생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초의미>란 신의 한계 밖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의미를 말한다. 자신을 초월하고 탈피하는 행위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인 <초의미>맛볼 수 있다.


기서 <초의미>의 궁극적인 의미는 나 자신의 한계치인 영역 밖으로 나아가 '너와 나'의 또 다른 관계차원으로 들어섰다는 사실 위에 성립한다.

 


 

가수 '애드 시런 Ed Sheeran'이 노래를 한다.


<슈퍼마켓 플라워즈 Supermarket Flowers>는 노래는

창가에 놓인 슈퍼마켓에서 사 온 꽃을 치우며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딸(시런의 어머니)의  애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Oh, I'm in pieces. It's tearing me up but I know

내 마음이 무너지고 있어, 하지만 난 알아

A heart that's broke is a heart that's been loved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 그만한 사랑을 받아서인걸


You were an angel in the shape of my mum 

당신은 저의 어머니의 모습을 한 천사였어요


When I fell down you'd be there holding me up

제가 넘어질 때마다 저를 붙잡아 주셨죠


어머니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깊은 사랑을 깨달은 딸은 서서히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며 인생을 살아낼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  


And I hope that I see the world as you did 'cause I know

그리고 난 이 세상을 당신이 바라봤던 대로 보고 싶어요

A life with love is a life that's been lived

사랑이 있는 삶이 진정한 인생일 테니까요


You were an angel in the shape of my mum

당신은 저의 어머니의 모습을 한 천사였어요

You got to see the person I have become

제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 그곳에서 지켜봐 주세요

나를 넘어서 상대를 향하는 아픔과 자각이 있어야만이

'너와 나'라는 또 다른 차원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란 서로 마주하는 상대의 따스한 손길 속에서 비로소 빛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제된 삶의 무의미성이, 죽음 같은 권태로움이

삶의 불합리함에 대한 허망함내 삶 속 여기저기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를 때마다


나는 가만히 내 삶의 실체이자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의미인 나의 아내를, 아들을 향해서 손을 뻗어 느껴본다.


니체의 말처럼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 낼 수 있기"때문이다.


나를 넘어서 우리를 향한 아픔을 기꺼이 감내하고자 먼동이 트는 새벽 창가에서 오늘 다시 한번 가만히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텅 빈 외양간 앞에서도 절대적인 존재의 의미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춤을 출수 있었 또 한 명의 선지자 '하박국'을 그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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