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삼촌 Jul 07. 2024

사람과 물고기의 경계에서

우리의 삶은 충돌의 장마전선 속에서도 계속된다.

 마는 뚜렷한 징후를 지녔다.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에는 기온이 시도 습하고 후덥지근하다. 짙고 어두운 잿빛 하늘과 불쾌하며 습하게 무더운 공기는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 력한 암시다. 


'오호츠크'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동북기류와 '북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습하고 '따뜻한' 서남기류가 이 땅 위에서 충돌하며 한동안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장마는 지루하게 이어진.


장마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개의 세력충돌하는 과정에서 생하는 '갈등적인 산물'이 되는 셈이다.


폭포수 같이 퍼붓는 갈등의 빗줄기 앞에서 택배기사는 아무리 바빠도 그저 일손을 멈출 수밖에 없다.

마냥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마음은 한없이 바쁘지만 빗줄기가 가늘 그때를, 그 순간을 기다리다 재빨리 움직이고 기다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그저 최선일뿐이다.


빗줄기는 모질게 내리지만 그날그날 배송해야 하는 짐들의 크기와 개수는 변함이 없다. 

이 와중에 상품이 없다는 전화는 유달리 더 많이 걸려온다. 요즘은 쿠팡을 따라잡으려 필사적인 일반택배사들은 택배기사들에게 요구하는 요청사항도 그들의 그것과 꼭 같이 덩달아 많아졌다.

 

당일배송률, 당일반품수거율, 문 앞 사진전송률 등등.

이 모든 것들택배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벌이는 물류회사족쇄 같은 '충돌의 산물들'이다.

고스란히 택배기사에게 쏟아지는 힘겹고 고된 장맛비가 된다.  


신속하게 잘 작동하지도 않는 스마트폰 앱을 달래 가며 문 앞 사진을 찍느라 빗속 송은 디기만 하다.

우리는 농산물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상품들을 많이 배송해야 한다. 두 손으로 무거운 상품을 배송한 후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다시 꺼내 앱을 작동시켜 사진촬영을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주민들이 기다려주는 시간의 허용치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저 침묵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듯,

이런저런 주변의 불만 어린 시선과 상황들이, 고객만족이라는 명분아래 나날이 강해지는 택배회사의 모진 요청들이 조용히 그쳐 주기만을 택배기사는 그저 바랄 뿐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택배를 시작한 이십 대의 오누이 중에 누나가 배송하다가 주저앉았다. 무거운 옥수수박스를 들다가 허리를 다쳤다. 배초기 일 년간 허리와 무릎이 몹시도 아팠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택배는 결코 쉽지 않다.

가족이 함께 하며 늘 서로를 살필 수밖에 없다. 특히 스물넷 인 아들이 택배에 잘 적응하도록 배려하는 것에 신경이 집중된다. 최근 은둔한 청년이 48만 명에 육박한다는 언론이 전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어두운 현실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부모님을 대신해서 하나라도 무거운 짐을 더 배송하려는 착한 아들을 보면서 드는 측은한 생각들이 마음판에서 어지러이 충돌한다.


어설프지만 운전대를 잡게 하고, 택배앱을 직접 사용하며 까다로운 고객응대도 내맡긴다. 하지만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지는 마음을 견뎌야 하는 것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태산 같은 잔소리를 참아내야 하는 것도 덤이다.

  

이십 대의 혈기왕성한 활동력을 오십 대인 부모가 따라잡고 맞추기가 참 힘겨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마음 한구석에 자식을 든든히 잘 세우고픈 부모마음을 슬며시 밀치고 자신의 위만을 챙기려는 못된 수컷의 이기심이 생겨나면서 한없이 충돌하며 거친 폭풍우가 생겨난다.

   

'큰 가시물고기'는 대표적인 부성애를 가진 물고기로 알려져 있다.

입속에서 새끼를 키우는 물고기도 있다고 하는데 큰 가시고기 수컷은 암컷의 산란이 끝나면 이후 알이 부화할 때까지 혼자 알을 지킨다. 10일간 둥지도 청소하고, 가슴지느러미로 쉬지 않고 부채질을 해서 알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 침입자를 죽기 살기로 방어하고 경계를 서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새끼가 부화하는 날, 아비 가시고기는 지쳐서 숨을 거둔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아비 가시고기의 사체를 먹으며 험난한 세상을 향할 기력을 충전한다.

     

화가 루벤스가 그린 작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노>에는 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 다섯 아들을 차례대로 잡아먹는 '사투르노'(영어권에선 '크로노스'/제우스 신의 아버지)의 잔인한 모습이 담겨있다.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자식의 가슴살을 물어뜯는 순간 자지러지게 울부짖는 아이의 비명이 터진다. 루벤스는 그 비명을 듣는 순간 되살아난 부성애로 멈칫거리며 갈등하는 찰나적 사투르노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수컷이 지닌 영욕적이고도 야망적인 '이기심'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부성애'의 렬한 충돌 속에서 거친 폭풍우가 몰아친다.

    

폭우아래에서 '사람이 물고기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생겨난다.


사람의 조그만 두뇌에는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과 본능적인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한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사람의 뇌(대뇌피질)', '파충류의 뇌(변연계)'로 구분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채 아비의 삶을 단순히 선택한 물고기처럼,

하등 한 '파충류의 뇌'에 의지한 삶으로 나 스스로를 내려놓고 싶다.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다가

물고기조차도 인식하는 본능적인 소중한 것들을 놓치과오를 범한다.


하지만 이런 자각 뒤에는

그러기에는 나의 혈기가 너무나 왕성해서 아직도 한참을 죽이고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깊은 한탄이 절로 스며 나온다.


"곁에 있는 이들을 떠나가게 한 나의 혈기를 다스리는데 35년 이상이 걸렸다"는 70세 가수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말은 나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된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어한다는 사실을

'수저계급론'같이 저급한 사회적 계약 속으로 옭아매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그러져가는


내가 살아가는   위로 장맛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그럼에도 오늘도 나는 가족과 함께 변함없이 택배를 하러 나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