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산새소리가 유난히 어지러이 거실을 휘감는다. 조용히 즐기던 음악을 끌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며 곁에서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살면서 이렇게 땀을 흘리며 일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
오늘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땀 흘리며 사는 나날들-강요가 아닌 우리 스스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이유는 몰랐지만-이 납덩이같은 회한으로 짓누르며 다가섰다.
감사함을 잃은 것 같아.
아내가 말하는 감사함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걸까?
매미가 흐드러지게 울던 푸른 가로수길에서 나는 아내를 기다리곤 했다.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내는 마중 나온 나를 보면 활짝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했다.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와중에여러 차례아는 이웃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느라 우리의대화는 자주 끊어지곤 했다.
'외계인방앗간' 떡빵카페에 앉아 차가운 아이스커피와 인절미빵,
친하게 지낸 채연이 엄마,지인들과의 이런저런추억들,
서늘하면서 기분 좋게 자극하는 향수냄새로풍성하게 채워진 백화점의 높디높은 천장,
이 모든 기억들이 8월의 매미소리를 타고우리를 감싸 안으며추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곳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여기에있는걸까.
인생은 '익숙한 것'과 '당연한 인연'과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씩깨닫게해 줬다.
오배송을 했다.
101동 1004호의 아이스박스를 103동 1004호로 잘못배송했나 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 거라 이해하겠다'는 문자를 보면서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순간 땀 흘리며 배송하던 나는 그만 감정이 상했다.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니 속상하지만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상대방의 애쓰는 노고가읽혔다.
나의 감정과도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그래야 내 감정에 함몰되어 휘둘리지 않은 채벌어진상황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거리 두기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배송을 하던 아들이 씩씩거린다.
왜 자기 상품을 옆집에다가 두었냐며 항의하는 고객전화를 받고는 확인해 보니 다른 택배회사 상품이었다. 우리 상품이 아니라고 말하니 사과는커녕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통에 젊은 아들은 분통이 나버렸다.
이런 싹수없는 여편네 같으니라고.
제대로 보지도 않고 우리 귀한 아들한테 어따 대고 지랄이야.
좁은 포터 안에서 아들을 두둔하며 흥분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분이 풀리는지 피식 웃는다.
자식 앞에서 늘 옳은 말만 하고 부모의 격식만 차릴 뿐 한 번도 자식의 영역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지혜로운 아내는 틀에 박힌 훈시보다는 공감을 선택했다.
'부모의 권위'를 내려놓고자식의 영역을 인정하며 거리를 두며 사는 지금의 삶이 육체적으로는 힘겹고 고달프기는 하지만 아들과 마음으로 한결 더 가까워진 순간들이기에 우리는 감사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감사를 잃어버리곤한다. 문득 '레이몬드 커버'의 소설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 나오는 한부부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지만 행복했던 '밀러'부부는 간혹 자신들이 별 볼일 없이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늘 복도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스톤'부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기계부품회사의 세일즈맨이었던 남편은 출장과 겸해서 부부는 자주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들의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이 부러웠다. 장시간 여행을 떠날 때면 그들은 '밀러'부부에게 키우던 고양이와 나무들에게 먹이와 물을 주는 것을 부탁하곤 했다.
부부는 교대로 고양이와 식물을 돌보기 위해 '스톤'부부의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색다른 경험을 한다. 그들이 동경하던 부부의 공간 속에 놓인 물건과 옷들을 통해 일탈적인 대리만족을 경험하곤 했다. 점점 그들은 '스톤'부부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으면, 그럴 거라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 잘못해서 아내가 열쇠를 두고 나오는 바람에 잠겨진 이웃의 대문 앞에서 부부는 깊은 절망에 빠져 버린다. 작가는 암시적으로 부부의 절망이 부탁받은 고양이와 식물에 대한 돌봄보다는 부부의 대리만족의 상실에 대한 깊은 절망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에덴동산에 살았지만 인간은 더 가지고 싶고 먹고 싶은 욕망에 금지된 '선악과'에 손을 내밀었다가 벌거벗은 치욕감과 함께가시떨기가 무성한 세상으로 내쫏겼다는 슬픈 <에덴 이야기>가 생각났다.
마음의 편안함이란 물질적 풍요나 성공이 아니라 철저한 '거리두기'에서 생겨나는 건 아닐까.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 것이 아닌 것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천국(에덴)에서 지옥 같은 세상으로 추락하는 순간이 된다.
내 속의 욕망, 감정에는 절제하는 거리가,
아내와 자식, 그리고 친근한 지인사이에도 적절하게 존중하는 거리가 필요하다.
글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쓰고 싶은 글이 내 속에 쌓이고 시간이 흐른 뒤 제대로 된 글로 완성된다고 여겼다.
'비비언 고닉'은 '거리두기'를 통해서 "글의 소재를 통제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책상에 앉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작가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할 준비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삶도 글도 적절한 '거리두기'를 통해서 가장 편안한 마음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결실을 맺나 보다.
창가에 붙은 매미 한 마리가 목청 높여 맴맴 거린다.
벌레라면 질겁하는 아내와 아들이 저리 가라며 한바탕 난리다.
문전박대당한 녀석은 더욱 서러운지 꼬리를 흔들어대며 한껏 목청을 높여 울어대더니 이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