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삼촌 Mar 01. 2024

사막에서 돌멩이가 꽃으로 다시 피어나다.

사막의 장미석(Desert Rose), 두려움을 평온함으로 감싸다.

바쁜 배송 중에 아내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층층이 멈춰 서며 내려오는 상황에 같이 있던 입주민들도 화가 났다. 알고 보니 미화원 아주머니가 문 앞에 붙인 전단지를 제거하며 내려오느라 지체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몰랐다며 황망하게 사과하며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니  한쪽 다리를 절고 계셨다.


먹고살기 위해 벌어지는 일들이기에 탓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부지런히 문 앞에 전단지를 붙여야 살고 누군가는 쩔뚝이며 그것을 떼어내며 산다 생각 드는 순인생이 참 서글퍼진다.


불현듯 다리를 절면서 돌아선 미화원아주머니 뒷모습에서 서울역 지하철역사를 향하던 여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최근 서울역 노숙인들의 실태를 취재 방송에서  여성노숙인은 한사코 잠자는 장소만은 공개할 수 없다며 완곡하게 거절하고 어두운 밤 서울역 지하철역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양손 가득히 비닐봉지를 든 그녀도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녀는 거액의 부동산사기를 당한 후 식당일, 타이어가 펑크 나도록 폐지를 주워 팔면서 죽어라고 일했지만 현실은 돈은 안모이고 골병만 들었다. 결국 모든 시도를 포기한 채 길바닥에 나뒹구는 돌덩어리처럼 자신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돈도 마르고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도 바싹 마르다 못해 타들어가는 갈한 갈증 엄습하는 현실은 영락없이 뙤약볕이 작열하는 사막 그 자체다. 어쩌면 지쳐버린 수많은 인생들도 몸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노숙인으로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막은 시련을 견뎌내야 하는 인생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상징성을 지녔.


사막은 인류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는 몇 안 되는 다. 사막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상황 불확실해지고 예측불가능해진다. 인생을 살면서 불확실해 보이고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때, 계획과 경험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감정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바로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살다 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하며, 신기루를 쫓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여정은 끝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사막에서 처럼 말이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중견 IT회사에 첫 입사한 큰아들은 좋은 상사를 만났다며 좋아다. 최근 회사의 조직개편 때 아들은 상사인 팀장이 해고되어 충격을 받았다. 상사인 팀장은 늘 팀원들을 우선 배려했일방적 지시보다는 개인적 의사를 존중하는 팀 분위기를 조성하려 해서 MZ세대인 아들도 너무나 만족해했다. 그런 아들의 동경의 대상인 상사가 해고된 사유는 일명 "괘씸죄"였다. 늘 팀원들 편에 서서 의견을 개진하고 여기보다 더 비전이 있는 회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전하라고 조언해 준 사실이 회사에 밉보인 것이. 앞으로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삼십 대 가장인 유망한 IT인재는 내쳐짐을 당했다.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팀원들을 소중히 여기며 달려왔는데 벌어진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며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낙담하는 상사와 그를 대하는 세상의 비정함을 생생하게 지켜본 아들도 한동안 혼란스러워했다.

 

방송매체를 통해서 경선에 탈락한 금배지를 단 정치인들이 연일 울분을 토해낸다. 지금까지 당과 총수를 위해 헌신한 대가가 이것이냐며 격앙한다. 정치적 생명을 더 연장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저항하고 있었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알파메일(동물행동학에서 동물무리 가운데 가장 높은 계급과 서열을 가진 개체, 특히 수컷우두머리)의 의중에 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크고 작은 조직에서 꼰대 같은 알파메일의 의중을 맞추며 다는 것은 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푹푹 빠져드는 힘겨움과 끝도 보이지 않는 암담함이 넘쳐나는 사막 속 여정과 같다. 갈 곳을 잃어버린  자주 멈춰 서는 순간마다 모래 위에 나뒹구는 돌덩어리나 바싹 마른 뼈다귀 신세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좌절과 비애감에 빠진. 그리고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우리는 늘 무엇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오늘을 산다.

사람들은 공포증 phobia을 지닌  살아간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결핍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들을 잘 살펴보면 부질없는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걱정들 중에서 그처럼 심각한 문제를 예상해야 할 만큼의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그 정도만 다를 뿐 포보포비아 phobopobia(공포에 대한 공포)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타당한 일 일 것이다.


공포들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삶.

그러한 공포증의 견고한 핵심은 바로 불행한 순간이란 결국 우리가 버려진 채 홀로 남겨지게 될 것이라고 여기며 자해하듯 예견하것에 있었다.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것은 실상 템포가 빠르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잡하고 혼란스러워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기에 여러 유혹들과 위험들이 들끓고 있는 이 유동하는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인 바로 우리 자신들이 느끼는 그 두려움 자체에 대한 공포인 셈이다.


공포를 느끼는 삶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앙투안 드 생 택쥐페리는 <바람과 모래와 별들>에서 "우리도 사막을 사랑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 사막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이라고 했다.


사막의 장미석, 데저트 로즈(Desert Rose)를 만나면서 나는 모래를 사랑하고, 세상 어느 곳에 있는 사막을 동경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데저트 로즈는 사막의 황량함 속에서 피어나는 신비로운 꽃으로 상상력과 창조성을 끊임없이 자극하기에 힘겨워 주저앉고 싶어지는 순간마다 다시 사막을 헤치고 나갈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사막의 장미석(Desert Rose)은 사막지역에서 형성되는 석회암 결정체이다.


사막의 장미석은 만들어지기 위해서 약간의 조건이 필요하다. 소금이 포함된 물이 계절마다 상승하고 하강하는 것이 반복되는 동안 건조한 모래 안에서 결정형태가 만들어진다. 바람, 물,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한 모래 또는 점토의 매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섬세한 장미꽃잎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과정은 수백만 년 동안 진행될 수도 있다.


데저트 로즈는 매우 깨어지기 쉽고 물에 취약한 광물이다. 하지만 거친 사막의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피워낸 강인한 산물체이기에 희망과 행운을 상징한다.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은 데저트 로즈를 바라보며 위안과 용기를 느끼게 된다. 메마른 모래알갱이, 이질적인 석회석 입자들이 감정 같은 소금기 머금은 물결이 오랜 세월 비벼지고 어우러져 탄생하는 가녀린 사막의 장미석에게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장미의 문양

가슴에 오롯이 새기고

버섯처럼 자라는 소금돌,

그 화려한 절정

온몸으로 밀어낸다.

아,

이 세상

그 어느 향기로운 꽃보다

더 아름답고 찬연한 돌꽃이여.

<신기섭, 사막의 장미석 중에서>


면서 돌덩어리처럼 내침을 당해도,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메말라버린 사막이라도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깊은 위안을 받는다.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막 한가운데서 간간이 마주치는 오아시스의 의미는 남다르다.

  

거친 택배일을 하면서, 힘겨움이 넘쳐나는 상황을 겪을 때마다 잠시의 쉼과 가족이라는 오아시스는 너무나 소중한 가치를 지녔음을 깨닫곤 한다. 


이런 살가운 쉼터에서 얻는 위안과 평온함이 우리의 가슴속에 상존하는 두려움을 잔잔하게 잠재워 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