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삼촌 Feb 25. 2024

세월은 감정을 따라 흘러가네요.

시간은 감정적이다.

눈비가 자주 온다. 우리는 최근 급증한 눈비와 추위로 인해 힘겹게 택배를 했다. 사계절이 하루 속에 욱여진 듯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따사로운 봄볕에 젖어들다가 새벽과 저녁의 매서운 추위에는 마냥 떨어야 다. 


춘삼월을 향한 가슴속 시간열차는 바람과는 달리 2월이라는 고갯마루 중턱에 걸려 한참을 더디게 흘러간다. 비수기로 인해 급격히 택배물량이 줄어들었다. 평소보다 두세 시간 일찍 집안에 들어선 우리와 아들은 창밖에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진 설경의 아름다움에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세상은 온통 '병원'과 '폭설'을 화두로 시끄러웠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병원마다 환자들은 생존의 위기감에 불안해하고, 폭설로 인해 강원도 산골마을 주민들은 고립을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하늘아래에서, 같은 사물을 어쩌면  이리도 다르게 느끼며 오늘을 살아가는 걸까.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 <기억과 시간>에서 시간은 객관적인 흐름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란 객관적인 척도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개인의 감정, 기억, 경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행복할 때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느낀다. 즐거운 일을 할 때는 집중하고 몰두하기 때문에 시간 흐름을 덜 인지한다. 슬픔에 잠겨 있을 때에는 주변에 무관심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는다. 좋아하는 행사나 만남을 앞두고 있을 때는 시간이 더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다.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불안감을 느낄 때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듯 느낀다.

    

인생은 각자의 감정이라는 창 앞에서 서로 다르게 세월(시간)을 느끼고 있었다. 때론 길고 지루하게, 때로는 짧고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을 감정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 5년 동안 일하다 떠나는 60대 형님부부를 배웅했다. 지난 5년간의 추억들을 되뇌다 이런저런 모진 말들로 인해 떠오른 상처들이 이내 글썽이는 형수의 눈을 통해서 오롯하게 느껴졌다. 가슴을 어르는 흔한 따스한  한마디 없이 아프고 더디게 흘렀을 지난 5년간의 시간들은 그렇게 상처만 남긴 채 흘러갔다.


한동안 택배기사의 가슴을 애타게 만들었을 주인을 잃어버린 상품들(오배송했거나, 주소를 잘못 써서 배송되지 못한 상품들)이 하나둘씩 제갈길온전히 되돌아가고, 고객의 실수도, 자신의 실수도 고스란히 내 탓으로 전가되는 속상한 상황 속에서도 택배기사의 가슴은 이상스레 담담하다.


아마도 택배 하며 할퀴듯 휘몰아쳤을 지난 4년간 세월파도가 가슴속 감정들을 갯바위처럼 단단하게 지고 짓이겨 놓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과거란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쓰디쓴 감정으로 포장된 우리의 기억일 뿐이다. 


아내와 커피를 나누며 지난 일들을 떠올리면 아프고 아쉬 추억만이 떠오른다. 핸드폰 속 아이들의 어릴 때 사진과 영상을 보면 미소가 떠오르다 금세 짠해진다. 막내아들의 얼굴이 그때도 쓸쓸했다. 왜 더 살펴주고 보듬어주지 못했을까. 무엇을 잡으려고 그리 바삐 사느라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의 아픔을 모르고 살아왔을까.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번쩍이던 도시의 밤 풍경을 담아내던 세상 속 창문을 뒤로한 채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우리는 지금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자락이 펼쳐진 창문 앞에 서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가까이 붙어 서로의 체온을 온전히 느끼며 부지런히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세월흐름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생겨난 상처들을 보듬고 쓰다듬으며 치유하기 위해 눈 덮인 산자락으로 가득한 창곁에 이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있나 보다.


세월절대적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며 상대적으로 흐른다. 과거의 아픈 추억도 오늘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에 그립고 애틋한 기억으로 다시금 하나둘씩 몽글거리며 되살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