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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하루를

수평적인 시선 속에서 열리는 또 다른 삶의 의미들.

by 코나페소아


매일 새벽 다섯 시가 오면,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현실은 자연스레 시작된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온통 희뿌연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몇 걸음 앞선 아내의 뒷모습조차 보이질 않는다. 차갑고 뿌옇게 서린 새벽공간 속으로 갈증 하는 뿌리처럼 앙상한 가지를 드리운 나무 곁을 그랬던 것처럼 스치듯 지나쳐 길을 나섰다.


과거나 미래의 일은 없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현재' 뿐이다.


현재의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오늘을 '톨스토이'는 사치보다는, 소박하게, 육체보다는 내면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라고 충고했다.


러시아 귀족출신이자 명망 높은 작가였던 그는 젊은 시절에 사치와 방탕한 생활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기나긴 정신적 방황에 빠졌던 그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신에게 감사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삶의 '진정성'을 견하고 다시 회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독하게 평범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란 최첨단 슈퍼컴퓨터조차도 쉽게 예견할 수 없는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이렇게 변덕스럽고 한 치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현실 속, 외진 한 모퉁이에서라도 과연 우리는 '톨스토이'가 발견한 삶의 '의미'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까.


안개가 자욱한 새벽풍경 속에서 나는 추위와 슬픔, 어떤 것을 선택해도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까지 겪어왔던 것처럼 힘겹게 다가올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 뿌려질 땀냄새만을 그득하게 뿐이다.


때늦은 입춘한파로 택배 하는 한 주간 내내 추위에 시달렸다.


달력은 따스한 봄이 왔다고 알려주지만 눈, 바람과 함께 영하 12도 이상을 넘나드는 맹추위만이 펼쳐지는 상과는 동떨어진 현실 속에서 매 순간을 견뎌내려 애쓰는 우리는 오늘 새벽녘에 무심히 지나친 한그루 나무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도 않고 차디찬 현실의 공 속으로 갈증 하듯 내뻗은 수많은 잔가지들처럼, 생을 향한 우리의 무수한 몸짓과 시도들, 앙상한 나무만큼이나 허망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나무 '히라야마'(영화 '퍼펙트데이'의 주인공) 그래서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나 보다.


점심시간이면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한 조각과 작은 우유 한팩을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들고는 화장실 옆에 위치한 산사로 오른 그는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들이 연출하는 찰나의 순간을 한껏 음미하며 즐곤 했다.


나무 밑동에 슬며시 솟아오른 어린싹을 발견한 그는 소중히 자신의 집으로 담아와 화분에 옮겨 심고는 마치 친구의 분신인 자식을 돌보듯 살뜰하게 보살핀다. 그의 집 베란다에 놓인 나무탁자 위에는 그동안 나무에게서 옮겨온 듯싶은 어린 모종들이 가득 들어찬 채 보랏빛 조명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고 사용하는 물건에만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경험과 이용가치에만 집중하는 삶 속에서는 진정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마르틴 부버'는 수없이 많은 '내용물'에만 둘러싸여 살아갈 뿐 진정한 관계를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사람의 매 순간 속에는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순간이 뿜어내는 수많은 빛나는 것들을 결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과거에 매여 움켜쥐고 소유하려 전전긍긍하며 가올 미래를 두려워하며 늘을 살아갈 뿐이다.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이용가치'를 떨쳐버린 채, 서로 느끼고 공감하는 현실 속에 오롯하게 집중하며 살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말 못 하는 나무와도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서로를 향한 친밀감은 돌봐주고픈 기꺼운 의무감을 들끓듯 며시 생겨나게 한다.


빨갛게 달아오른 난로 곁에서 꽁꽁 언 손발을 녹일 때면 새삼스레 나의 육체에게 자주 감사하게 된다. 건강하게 나와 함께 움직여줘서 고맙고,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혼잣말을 나의 손과 발에게 건네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시야에 맴돌듯 휘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택배 가득 찬 수레를 부여쥔 두 손과 눈 쌓인 길을 헤치며 걷던 두 다리는 지금, 현실 속에서 나를 지탱시켜 주고, 내가 의지할 유일한 또 다른 존재라는 사실 깨달아지면서 나날이 은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새하얗게 눈이 덮인 길 위에서 불불거리는 시동소리와 함께 무거운 택배짐들을 한가득 짊어진 채 묵묵히 다리는 중고택배차 '포리'도 한없이 정겹고 고맙만 하다.


모진 추위조차도 오늘 배송해야 할 짐들 때문에 우리는 멈추지 못했다. 배 한 상자, 한 상자를 오배송이 나지 않게 신경 쓰며 배송하는 과정이 힘겹지만 덕분에 맹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힘겨운 현실은 우리가 멈춰 서지 않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계속해서 아가게 만들었다.


마지막 배송지에서 텅 빈 탑차 문을 닫을 즈음이면,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예견할 수 없지만 그저 오늘 하루가 잘 마무리되었다는 사실 앞에 깊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감사한 마음도 생겨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차창 밖으로 새하얀 싸리 눈이 다시금 어지러이 날아와 부딪쳐 흩날리지만 곁에서 도란도란 주고받는 아내와 아들의 대화소리가 한없이 정겹다.


슬며시 틀어놓은 '강허달림'이 부르는 노랫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무언가를 찾았지.

내 미움이 향할 곳.

내 텅 빈 맘 들어줄 어딘가의 품,

내 마음 머물 곳.


뭐 아쉽던 날들이 없겠나.

빗나간 순간들.

굽이굽이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


사람이 그리윘다가도

고달프게 했다가도 다시 보고 싶게 하네.

그 마음 때문에 살아가네.

하루하루 또 하루를.

<가수 '강허달림'이 부른 노래 '또 하루는' 가사 중에서 >


수증기가 하얗게 피워 오르는 뜨거운 사우나 욕조 속으로 지친 몸을 뉘었다. 평온다. 제야 세상 살 이 난다. 휴일 이른 아침에 한 주간 동안 강추위에 기진맥진한 내 손과 발을 마음껏 위로했다. 문득 욕조 밖 한구석에서 세신을 하는 때밀이 아저씨가 보였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에는 내가 달콤한 휴식을 즐기는 이 순간에도 땀 흘리며 일하는 누군가는 존재했다. 삶은 우리에게 갇혀있을 '현실'이라는 감옥을 늘 던져준다.


세심한 손놀림으로 손님의 등 위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때밀이 아저씨를 보면서 현실이라는 담벼락을 최선을 다해 장식하며 살아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며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갉아먹는 삶'에서 탈피할 수 있으리라.

탕 속에서 눈을 감은 내 머리 위로 서로를 향한 수평적인 시선 속에서 피워 오르는 삶의 새로운 의미들이 천장 위 수많은 물방울로 아롱지게 맺혔다.

나무, 때밀이 아저씨, 나의 손과 발, 그리고 택배차 '포리'... '히라야마', 그리고 '가족'.


'페소아'가 쓴 글처럼 움직이지 않는 현실이라는 옥의 담벼락 외곽을 색색의 조각으로 아로새긴 '망각'''의 그림자로 장식하며 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렇게 나의 하루가, 우리의 삶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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