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가죽을 빌려 입지 않기로 했다.

얇은 피부로 세상의 온기를 느끼며 사는 법.

by 코나페소아

그녀는 살면서 딱히 남에게 자랑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세울 것이 없는 탓도 있지만, 성격상 자랑질이 몹시도 거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입장을 말할 때도 상대의 작은 반응조차 민감하게 신경 쓰였다. 그래서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상대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호응하는 편이 오히려 더 편안했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어하리라는 생각이 유난히 강했다.


우리 사회는 내성적인 성품을 향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향이 강하다. '심약해서 큰일을 못 할 것'이라는 편견에 시달리거나, 스스로도 이를 부끄러운 약점이라 생각해서,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기도 한다.


세상의 자랑스러운 것과는 한참이나 동떨어 진 듯한 택배현장의 레일 주변이지만, 얼굴 두꺼운 이들의 자랑질은 얇은 피부를 가진 이의 얼굴 위로 여지없이 파편처럼 쏟아진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강남바닥을 휩쓸 때는 말이지…", "너는 물량이 그게 뭐야? 난 아파트 단지만 골라 배송해서 너랑 수준이 달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지만 자신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배송을 마쳤다며 기세등등하게 떠드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고,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그 틈바구니에서 묵묵히 그런 허세를 견뎌야 하는 '얇은 피부의 종족'들은, 자신이 한없이 수동적이고 열세인 존재로 전락한 듯한 상황에 서글픈 피로감을 느끼곤 한다.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자랑을 하려고 하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가련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던 ‘지위 불안’이 이곳 택배 터미널의 레일 주변에도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상향 평준화된 세상의 기준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목소리로 내뱉으며, 그들은 내면의 불안을 필사적으로 잠재우려 애쓰는 중이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삶의 전쟁터를 누비며 생존해야만 했다. 작은 빈틈조차 강박과 자책으로 메워야 했던 시간들. 특히 가족이라는 성벽을 지켜내야 하는 중년들에게는 사회적 무장해제의 후유증을 견디는 일조차 사치였다. 연약한 피부를 짓이겨 코끼리 가죽처럼 무디게 만들면서까지, 오직 강한 척하며 하루를 버티는 것이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왜 우리는 이처럼 늘 불안에 떨며 '코끼리 가죽'을 뒤집어쓰기를 강요받으며 살아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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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택배차 공간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 가까이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입니다. 저는 세상을 읽으며 글을 쓰는 몸글 사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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