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순간마다 오아시스는 있었다.

by 코나페소아

인생은 모래폭풍 같은 시련이 엄습하는 사막과도 같다.


그 속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집착한 것이 있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장남으로, 가장으로, 사업가로 멋지게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업실패, 중년의 은퇴, 노후에 대한 불안 등 각종 닥쳐오는 인생의 사막들 앞에서 나의 집착은 점차 인정에서 돈으로 변해갔다. 가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

했다.


자작곡 <MINDSET>에서 아들이 노래하듯 돈이 아니면 우리 가족을 어떻게 챙기냐는 심정이었다. 돈을 바라보는 마음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우리에게는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돈 이외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택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돈만을 위해 선택한 택배를 하면 할수록 인생의 최고가치가 돈이 아니라 돈 이외의 것에 있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각인하듯 체감해야 했다.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멈춤이라는 의미가, 그리고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왜 쉬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피부로 생생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나의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명절특수기의 택배가 잠시 멈췄다. 오늘부터 나흘간의 휴식이다.


택배가 끝나고 나면 무기력증에 빠진 것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택배 하러 출근하는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배송을 마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한다. 탑차에 상차를 끝내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이제는 배송에 대한 압박감이 온몸을 휘감아친다.


배송하는 순간에는 다양한 상황이 덮쳐오고 그것을 배송하는 동시에 해결해나가야 한다.


"상품이 도착 안 했는데요?".... 송장추적, 수하인 여부확인, 상황해석 및 대처방법 선택, 해결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카톡이 울린다.


"카톡"."장기간 스캔누락상품 즉시 확인 후 처리

요망" 등 대리점에서 보내온 요구사항을 해결하려 상품정보를 확인 후 완료키고 다시 배송에 나선다.


언제 도착하느냐?

찾으러 가면 안 되겠냐?

무슨 상품이냐? 등등 별의별 배송시간을 갉아먹는 각종 요청들로부터 소중한 배송시간을 지키려 애쓰다 보면 배송이 끝난 후 맥이 풀리면서 무기력해며 격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지만 습관적으로 새벽에 어김없이 잠을 깬다. 지난 한 주간 폭풍 같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여유와 커피 한잔의 사색으로 이 새벽을 온전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쉼의 여유가 느껴지다가 갑작스레 우울한 생각들이 피워 오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반복적이고 내 것 같지 않은 현실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살아갈 때마다 눈앞의 힘겨운 현실은 늘 짐이 된다. 애써 외면하려 발버둥 치지만 그것에 얽히고설킨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실은 그저 인생을 완성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재료'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직면한 현실이라는 재료의 질감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인생을 만들어 갈 수는 없다.


싫어서 주어진 '현실'이라는 재료에 손도 대지 않고 외면해 버린다면 영원히 결과가 없는 허무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것 같다.


시인 '알프레드 수자니'는 현실에 매몰되기보다 '내면'에 집중하며 현실을 대하라고 조언한다.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내면'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나에게는 <쉰다, 멈춘다>라는 의미로 와닿는다.


가장 바쁜 명절특수기의 택배 후 나흘 안의 휴식은 지친 심신을 정돈하며 나를 찾는 순간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택배를 하면서 쉰다는 의미는 각별했다. 택배를 하기 이전에는 휴일, 연휴, 휴가 등은 그저 장소가 직장에서 집으로, 대상이 직장동료에서 가족으로 바뀐 또 다른 이벤트를 하는 것 같았다. 즐길거리, 먹을 장소를 찾는 그리고 밀린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또 다른 일을 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택배를 마친 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저녁시간은 근사한 음식이나 장소가 아니라도 너무나 포근하고 감사했다.


가족이 함께 일하던 습관 때문인지 집에 와서도 서로 알아서 식사준비를 한다. 아내가 음식을 하면 그 외 모든 일들은 나와 아들이 나눠서 뒤처리를 한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 이런저런 배송에 얽힌 에피소드를 말하는데 공감되고 재미가 있다.


우리 가족이 언제 이렇게 식사자리에서 이런 친밀감 속에 식사를 했었나 싶어 진다. 택배를 하면서 힘겨움이 있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이렇게나 좋고 감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택배가 일찍 끝나는 날이나 일요일 아침에 아파트 정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바쁜 택배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거닐면서 자유스러운 느낌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어 지면서 이내 행복해진다.


휴식시간은 너무나 달콤하지만 아쉬움만 남기고 훌쩍 사라지지만 다시금 택배를 할 힘과 여유가 차곡하게 생겨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택배를 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집'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힘겨운 택배일을 끝내고 돌아와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를 감싸안는 포근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비록 전세였지만 집이란 공간이 주는 위로는 너무나 달콤했다. 가족이 함께 휴식하고 서로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에 대한 간절함이 생겨났다.


그때까지 집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굳이 힘겨운 경제적 부담을 지고 집을 소유하기보다는 차라리 여유게 생활하는 것이 더 가성비 있는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의 강도가 큰 택배일 때문인지 외출보다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택배 후 충분한 휴식을 누리고 싶은 간을 소유하고 싶은 열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택배에 매여있어 늘 시간이 없는 상황이라 이년마다 이사를 한다는 현실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 가진 돈이 너무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레버리지(대출)'의 힘을 빌려서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당시 집값이 한창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때였지만 우리에게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소중한 둥지라고 여겼기에 모든 것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겼다.


집에 대한 열망은 갑자기 우리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주택청약을 신청했으나 갑자기 폭등한 경쟁률 때문에 떨어져 버렸다.


차선책으로 기존의 신축아파트인 지금의 집을 매수하기로 했다. 도심에서 벗어났지만 충분한 녹지공간, 산책로, 등산로 등 자연친화적인 아파트라 좋았다. 포기하고픈 고비를 넘고 넘어 간신히 대출승인을 받았다.


집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택배일로 지친 우리에게 회복과 쉼을 주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러면서 집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형제들과 아들이 기꺼이 베풀어준 온정이 흠뻑 묻어있는 고마운 공간이기도 하다. 아파트 입주민카페에 요즘은 집값이 많이 떨어져서 상하다거나 집을 급매로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고 걱정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져도 우리 집이 좋다. 우리의 집은 단순한 매물거리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피붙이들의 관심과 가슴 뛰게 했던 감동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우리 가족만의 소중한 쉼터이기 때문이다.




간혹 아내와의 투닥거림도 있고 이런저런 잔소리에 화를 내기도 하지만 눈만 마주치면 금세 웃음을 터뜨리며 풀어지고 만다.


힘든 배를 하면서도 아내의 미소를 이렇게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사업실패 후 결코 볼 수 없으리라 여겼고 힘든 택배를 하면서 이젠 진짜로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싶다.

택배체질도 아닌데 낯선 택배현장에서 동료기사

들과 웃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

이 들었다.


같이 냉면을 먹다가 먼저 일어나 나가버리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이혼을 결심했다는 모 연예인부부의 사연이 생각난다.


부부에게는 사소한 것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늘 아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다. 그런데 아내와의 대화가 참 즐겁다. 내 머릿속에는 세상을 위한 야망은 오래전에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 싶다.


이전에는 일, 비즈니스 상대를 설득하고 성과를 올리는 방법에 늘 골몰했다. 아내와 대화할 여력이 없었다. 대화를 하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식사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남편과 다름없던 나를 착한 나의 아내는 잘 참아주고 인내해 주었다.


가끔 농담 삼아 아내에게 이젠 보내주겠다는 나의 말에 아내는 꼭 한마디를 내뱉는다. 수많은 세월 동안 당신을 이렇게 길들여놨는데 억울해서 그리는 못하겠단다. 왜 그동안 아내의 소중함을, 아내와의 즐거움을 누리고 만끽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요즘은 아침마다 아들의 자작곡들을 들으며 일을 한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생소했지만 이제는 아들의 음악들이 너무 좋다. 그래서 아들의 목소리로 새벽을 연다.


그런데 가사 속에서 아들의 가족에 대한 속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뭉클해진다. 아직 세상물정을 스물셋 만큼만 순수하게 알 뿐이지만 부모와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이렇게 깊을 줄은 전혀 몰랐다.


아들과 함께 택배를 하면서 우리는 동료가 되었다. 택배를 하면서 때론 실수하는 부모를 나무라고 때론 부모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해진다. 이렇게 착하고 소중한 아들을 우리는 왜 그렇게 인정도 못하고 따스하게 감싸주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나는 늘 성공해서 아들들에게 물질적인 넉넉한 후원자가 되어주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능력 있는 아버지로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유학도 보내주고 뭐든지 원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그런 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들이 힙합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고등학교 3년 동안 힘들고 우울하게 보내왔는지를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 아버지란 인정받기보다는 인정해 주는 위치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음악은 내 필요 없는 안정제,

지금 내 신세 나도 알아 형편없네.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위해 달려.

내 심정 알아주는 사람 얼마 없고 그저 부모님과 돈을 위해 난 달리는 중.

여전히 두려운 건 무관심. 난 받고 싶어 피드백.


행복하게 돌봐주고 인정해주지 못해 왔음을 아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프게 느끼게 된다.


언젠가 저녁노을이 지던 해변가를 맨발로 걷다가 어린 시절 한없이 갑갑해하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던 바다와 파도를 중년이 다되도록 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나?

무엇 때문에 힘겨워하며 살아왔나?라는 가벼운 자책과 함께 어린 시절과 지난 추억이 왈칵 밀려오면서 잊었던 감동을 다시 경험했었다.


오랜 시간 잊고 살아왔지만 늘 내 곁에 소중한 그 모습 그대로 바다가 파도가 있어줬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고 고마웠다.



가장 바쁜 화요일 간선차량이 지연되었다. 멈춰 선 레일 곁에서 나는 글을 곤 한다. 멈춰 선 삶의 짧은 순간들에서 생생한 글감과 번뜩이는 소재를 발견하고는 한다.


택배를 하면서 그동안 멈춰 선다는 의미를 장애물로 착각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멈추는 그 지점에서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 돈 이외의 것(아내, 아들, 가족, 쉼, 집)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음을 말이다. 늘 내 곁에 있던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잊고 살아왔음을 말이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야 한다. 사막에서는 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간다. 더 자주 멈출수록 인생의 사막에 더 깊이 들어간다. 잠시 멈춰서는 매 순간마다 숨겨진 오아시스는 있었다. 단지 그것을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거나 장애물로 착각할 뿐이다.



힙합이야기 핫네이버후드의 <MINDSET>

https://youtu.be/0 KSmyKfVc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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