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소설 <와일드>에서 주인공 스무 살의 셰릴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고 알코올중독, 매춘, 마약 등으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홀로 걷고 또 걷는 것이다.
모하비사막을 시작으로 오리건주와 워싱턴 주 경계에 흐르는 컬럼비아 강을 가로지르는 '신들의 다리'를 향해 걷는다. 배낭을 멘 그녀의 유일한 선택은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뿐이다. 나무들이 쌓여 있는 모습, 풀밭, 산, 사막, 바위, 개천, 강, 잡초, 일출, 일몰을 바라보며 몇 킬로미터고 계속해서 혼자 걷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마침내 '신들의 다리'에 도착한 셰릴은 대장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저 수면아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와일드 / 셰릴 스트레이드>
'리베카 솔닛'은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 같다고 했다. 그리고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이라고 정의했다. 셰릴은 갈갈이 찢어진 인생을 다시 꿰매는 바느질을 하듯 수천 킬로의 <PCT>를 홀로 걷고 걸었다. 그녀의 대장정의 보행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도록 상처를 치유하는 기나긴 과정이었다. 상실의 아픔으로 무너진 잔인한 삶에 대한 최선의 저항이었다.
셰릴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저항하듯 사막을 걸었지만, 택배기사인 나는 거친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사는 이곳 저곳을 헤매듯 걷고 또 걷는다.
배송지에 도착해서 탑차문을 여는 순간부터 택배기사의 걷기는 시작된다. 만두가게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변에 포리를 세우고 아이스박스 상자들을 들고 걷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서는 어두운 계단을 오르내리며 송장에 적힌 호실 주소를 확인하고 문 앞에 택배상자를 내려놓는다.
요즘 점집 00 암은 침체된 경기 때문에 찾는 손님이 많은 건지 자주 홈쇼핑상품을 시킨다. 좁은 철제사다리를 간신히 헤집고 올라가 상품을 올려둔다.
물류센터의 상승하는 나선형 진입도로를 따라 커다란 화물차들과 함께 빨려가듯 들어가 흩어진 도크와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택배상자들을 바쁘게 배송한다.
요즘 캠핑과 차박열기 때문인지 대형문구점 2층에 오픈한 캠핑용품점으로 대량의 캠핑용품들과 문구상품들이 주말이나 휴일전날에 큼직한 몰짐들로 많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캠핑테이블, 의자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은 택배기사인 나에게는 캠핑의 즐거움이 아닌 무거운 힘겨움만 안겨줄 뿐이다.
부지런히 상품들을 화물전용 엘리베이터 속으로 옮겨 놓고는 닫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큰 짐들은 덜어냈다는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아파트단지에 도착해서는 엘리베이터와의 동행이 시작된다. 나의 배송구역의 첫 번째 아파트단지는 2천 세대가 사는 대형단지이지만 오래된 구형 아파트단지라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많이 느리고 취소버튼이 작동되지 않는다. 한번 잘못 누르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낭패를 볼 수 있어 층수버튼을 신중하게 눌러야 했다. 저층의 경우에는 차라리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배송을 하는 게 더 빠르다.
택배를 하기 전에는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배송기사들의 표정이 왜 저렇게 무겁고 어두울까 생각했었다. 택배초기에는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며 나름의 차별화된 택배기사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처럼 변해버렸다. 배송을 하면서 겪는 이런저런 시비 속에 자신을 방어하려 할수록 무표정해지고 속도가 시간을 벌게 한다는 조바심이 발걸음을 촉박하게 재촉하기 때문이다.
택배를 하는 현실은 속도가 시간을 벌게 한다는 환상에 쉽게 빠지게 만든다. 속도의 환상에 빠져 걷는 순간부터 내가 가는 배송구역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부부가 양손에 한가득 짐을 들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는 먼저 층수버튼을 누르고 배송하는 몰염치한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조급함과 짜증 섞인 감정으로 뒤범벅된 채 지켜낸 몇 시간은 그저 허탈감과 짙은 후회로 다가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속도의 환상에 빠져 조급함과 속도로 걸음을 가속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고 서둘러야 할 시간들은 하루를 더 짧고 허무하게 만들었다.
택배기사 소통카페에서 험지를 배송하는 한 택배기사의 사연이 생각난다.
보통 시간당 60건을 배송할 수 있는데 험지에서는 30건도 배송하기 힘들다. 특히 한두 건을 배송하는데 왕복 5킬로를 30분을 소요하며 배송할 때는 속이 까맣게 탄다. 그런데 그전에 이 구역을 배송하던 선배 택배기사가 사정이 생겨 인수인계를 하시게 되었는데 이곳 사람들과 그동안 정이 들어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워하더란 사연이었다. 베테랑 택배기사와 초보 택배기사의 배송구역을 바라보는 시선과 걸음의 호흡이 다르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걷는 행위와 택배 하며 걷는 그것의 공통점은 내 몸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세상을 통해 내 몸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나와 길이 실과 바늘처럼 하나가 되어 엮이는 과정이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며 걸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보행하는 인간이 가진 힘이라고 했다.
느림의 걸음이 지닌 비밀은 주변의 풍경에 천천히 다가가다 보면 그 풍경과 조금씩 친숙해지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자주 만나다 보면 우정이 깊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걷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다가서는 것이라기보다는 거기 있는 것들이 우리 몸속에서 들어와 더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택배를 하며 걷는 순간마다 내 몸속으로 이곳 사람들과 풍경들이 깊숙이 들어오도록 허용하며 걷고 싶다. 모진 삶의 생존을 위해 속도와 조급함으로 갈기갈기 찢겨나간 매 순간들과 나의 가슴을 기워내고, 치유하는 바느질하는 택배기사이고 싶다.
살아야 할 이유가 뭐 따로 있겠니?
난 목표를 정한 채로 달려 그게 끝이야.
생각하기 전에 난 실행하고 봐.
난 피할 곳이 없네. 무너지려 했던 열아홉. 되찾아 왔던 건 가족뿐.
나 헤엄치고 있어. 우물 안에서.
장난칠 시간은 없고 이젠 전부 실전.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밑져야 본전.
아들도 열아홉 살 때의 상처를 치유하려 헤엄치듯 인생을 걷고 있었다. 부디 속도의 환상에 빠지지 말고 치유하는 느리고 저항하는 걸음으로 우리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걸어가는 사람은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리베카 솔닛>
힙합이야기 핫네이버후드의 <This is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