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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과 며느라기.

갈등과 공존사이에서

by 코나페소아

명절연휴 늦은 아침에 눈을 뜨니 침실 문으로 햇살이 서늘한 바람과 함께 기분 좋게 쏟아졌다.


바쁜 택배 일정도 없고, 느긋하게 유영하듯 범한 일상에 내맡겨진 이 순간, 이런 느낌을 감미롭다고 하는구나.


마냥 감사하면서 행복해진다.



원두커피를 내리고 아내와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아내와 함께 준비한 명절음식들과 '소고기 뭇국'이 맛있게 된 것 같다. '동그랑땡'이며 '꼬지부침'을 준비하는 동안 막내아들이 오가며 부지런히 집어먹는 걸 보니 맛이 괜찮은가 보다.


큰 아들이 오면서 모처럼 식탁에 네 식구가 온전히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큰 아들이 서운한 속내를 툭하니 내뱉었다. 자기는 한해 더 휴학을 하고 편입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우리의 거절에 서둘러 편입했다며 서운함을 은근히 표현했다.

제 또래 친구들 중 부모님이 노후대비를 포기한 채 학비를 지원해 주는 것에 비해 엄마아빠는 냉정히 자신에게 서둘러 진로와 취업을 결정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불만이 있었나 보다.


아내는 서운함에 그만 목소리가 평소보다 커졌다. 당시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지원을 해준 건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하냐는 서운함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서둘러 마무리되었다.


좀 더 준비해서 좋은 스펙으로 사회무대로 진출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큰 아들의 아쉬운 바람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50대에 들어서면서 빠듯한 살림 속에 자녀교육, 그리고 다가오는 정년퇴직으로 인해서 선택과 집중이 긴박하게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내린 우리의 결론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모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는 우리 스스로 경제적으로 단단하게 중심을 부여잡고 서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부모님과 자식들에 대한 이런저런 부담을 치르며 사느라 아무런 대책 없는 상황에서 성큼 다가선 우리의 노후가 두려웠다. 우리의 불안한 노후를 자식들에게 힘겹게 부담지운다는 건 너무나 싫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힘겨워했던 굴레를 자식들에게 똑같이 대물림하는 건 잔인하고 무책임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식은 자식대로, 부모는 부모대로의 입장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타당한 서운함을 가지고 명절에 갈등하며 이렇게 함께 모여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가 '며느라기'라는 웹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내용을 들으니 솔깃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더욱 생기 나서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한 어머니와 두 아들 부부의 사연이었다.

추석명절에 시댁에 큰며느리는 임신했으니 갈 수 없다고 당차게 말하는 반면에 수더분한 둘째 며느리는 속에 있는 말도 못 한 채 시댁에서 이런저런 며느리의 역할을 하느라 힘겹기만 했다.


일꾼처럼 취급하는 시댁의 현실이 속상하고 큰 형님처럼 당당하게 처신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못나고 초라해지는 둘째 며느리이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곁에 있어 이젠 명절도 덜 힘들다며 친지들에게 말할 수 있어 자랑스럽기만 하다. 둘째 아들은 아내가 고생은 하지만 엄마와 함께 오손도손 서로 도와가며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정겹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런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명절에 한가족이 어머니, 며느리, 아들이 제각각의 다른입장에 서서 갈등하며 그렇게 함께 모여있었다.


왜 사람들은 추석명절에 함께 모여 이렇게 충돌하는 걸까?




세계적인 문화심리학자인 '헤이즐 마커스'와 '앨래나 코너'는 사람의 내면은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 자아'로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분류가능하다고 했다.


독립적 자아는 자기 자신을 개별적이고 고유하고 다른 자아와 주변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대단한 존재라고 여긴다. 반면에 상호의존적인 자아는 스스로를 관계지향적이고 다른 자아와 비슷하며 주변환경에 적응하고 전통과 의무에 따르며 질서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 본다.


그들은 저서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에서 사회 내 다양한 갈등의 원인이 이런 상이한 자아간 충돌 때문이며 해법은 서로 다른 자아간 차이를 얼마나 잘 수용되고 받아지느냐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의존적인 삶을 벗어나 독립적 자아를 꿈꾼다는 건 또 다른 자유를 찾는 행위이다. 반면 독립적 자아 간에 상호관계를 통해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음으로 서로 간 자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삶의 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적 삶은 이런 두 양식의 자아형태 중 어느 한편을 들기보다는 서로 잘 조화되고 융합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사회적 갈등은 서로 다른 자아 간의 충돌 때문이기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아를 소환해서 활용할 수 있다면 많은 충돌을 피하고 공존하는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다.


독립적인 자아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동등한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다.


상호의존적인 자아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이해하기까지 단순히 상황에 적절한 자아를 소환해서 처신하는 능력보다도 세월의 도움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가 자식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남편이 아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한 관심과 변화된 문화를 피워내는 정성이 필요하다.


서로의 입장이 온전히 이해되기까지 갈등과 충돌의 힘겨운 순간들을 통과하고 견딜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설익은 자식들에게는 교훈보다는 그저 스스로 충분히 익어갈 세월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모는 안다. 지금 당장은 오해를 당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아주 먼 훗날 부모의 입장에, 시어머니의 입장에 서게 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이 마음을, 그 마음들이 알게 되리라.


살다보면 살아진다.

이 노래가삿말 속에는 인생의 굴곡진 갈등을 수용하며 공존하라는 의미도 내포된 아닐까.


명절음식을 만들 때마다 나이 쉰 줄에 들어 선 딸은 비로소 엄마의 마음과 수고가 온전히 읽혀져 애틋한 회한을 간간히 내뱉곤 한다.

인생의 크고 작은 두 자아간의 충돌은 시간의 여백 속에 잦아들고 우리에게는 그저 그것들을 충분히 감내할만한 철든 인내심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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