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을 전후로 1주일씩, 약 2주간을 '명절특별수송기간(특수기)'이라고 해서 택배사는 폭증하는 택배물량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각종 대책마련에 고심한다. 택배기사 역시 늘어난 물량으로 인해 힘겨운 상황은 마찬가지라 평소와는 다른 배송대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맡은 구역은 올해 명절은 예년에 비해 물량이 확실히 더 늘어났다. 추석명절 씀씀이가 커졌다는 의미인데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더 윤택해졌거나 아니면 코로나 이후 되살아난 소비심리여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몰짐 등 많은 배송물량이 나와서 우리는 배송방식과 배송루트를 새로 짜야했다. 값비싼 선물세트들이 많아 배송 시에는 특히 오배송이나 분실, 파손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주변의 동료택배기사들도 다들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평소에 전혀 힘든 내색조차 않던 M과 남들은 비를 다 맞아도 자신은 비가 피해 간다던 오만한 Y조차도 은근하게 힘들다고 말하는 걸 보니 요즘 시기가 힘든 상황이긴 한가 보다. 같은 구역에서 오가며 마주치는 타 택배사 60대 형님기사는 비가 온 전날에는 밤 11시까지 배송했다며 죽겠다고 하소연하시는데 짠해진다.
가족이 함께 택배 하니 좋겠다며 그 형님의 부러움을 받던 우리들 역시 힘들기는 매양 마찬가지다. 배송도 배송이지만 물건을 받아 탑차 안으로 모두 옮기느라 꽤나 힘들었다. 워낙 많이 늘어난 배송물량에 한차에 다 실을 수가 없어 매일 2회전씩 배송을 해야만 했다. 거의 짐을 다 실었는데 다 실을 수 없겠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일부 크고 무거운 짐들을 빼놓고 배송할 수밖에 없었다.
왜 물건이 오지 않냐는 고객에게 상황을 설명드리며 양해를 부탁드리자 감사하게도 알겠다며 힘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면서 마음이 따스해온다. 택배기사를 하면서 배려를 받는 느낌이란 게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참 생생하게 체험하고는 한다. 아울러 툭 던진 폭언 한마디가 주는 상처가 얼마나 깊고 큰 상처가 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배송을 하고 차로 돌아온 아내가 속상해했다. 크고 긴 상품을 애써서 배송하고 왔더니 '택배를 이따위로 배송하시네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자기 집 문 앞이 아닌 떨어진 곳에 상품이 놓았다고 항의한 것이었다. 고객입장에서 택배비를 내고는 당연히 받아야 할 '문 앞' 배송서비스를 제대로 못 받은 것 같아 속상하게 생각하실 수 있다.
택배가 왔다는 문자에 문을 열어보고 눈에 안 보이면 택배가 없다고 하는 분실 전화를 종종 받곤 한다. 택배기사입장에선 참 야속한 순간이다. 상품이 없다는 연락을 받으면 배송을 중단하거나 무거운 마음으로 잃어버린 상품을 찾는 순간까지 배송하는 내내 맘을 졸여야 하는 등 심리적, 육체적 대미지가 크기에 가급적 문을 열자마자 눈에 잘 보이는 곳에다가 두려고 무척 신경을 쓴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엘리베이터이기에 열리고 닫히는 짧은 수초 간의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택배기사가 처한 배송여건이다. 배송량이 많거나 상품이 크고 무겁고 입주민들이 함께 타고 있는 경우에는 서둘러 배송할 수밖에 없다.
급한 배송 후 마음도 불편한데 막말 수준의 항의를 받고나면 한껏 속상해진다. 폭언문자에 감성이 예민하고 여린 우리는 배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택배기사에게 명절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래저래 힘든 감정과육체에 대한 '특별관리기간'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명절이면 이곳저곳에서 명절선물세트를 받곤 했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직급이 되니 협력사들로부터 '챙김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관례처럼 여겨져 무덤덤하게 받아서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다시 선물하곤 했다.
사업을 하게 되면서 명절 때가 되면 고객사들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선물할 상품을 고르고 선정하는 과정이 참 까다롭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받는 이의 위신과 체면, 그리고 비용까지 고심해서 선물을 고르고 나면 이것을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고 인상 깊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다시 현업에 복귀한 뒤에 협력사로부터 명절선물을 받고 보니 그 선물에 담긴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절로 감사하다는 답신문자나 전화를 꼭 하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만큼만 알고 행동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전부 다 인 것처럼 행동하고 처신한다면 이기적이고 편협한 인생으로 지탄받는 대가를 치르며 살수 밖에 없다.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을 귀찮아도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 의미를,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얼마나 가치 있고 풍요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추석명절의 진정한 의미는 멀어졌던 사이, 끊어졌던 관계들이 다시 이어지는 '관계회복'에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배려는 관계회복을 하려는 실천적 행동이고 명절의 따스함을 되살리는 불씨라는 생각이 든다.
명절의 이런저런 사연들을 품은 수많은 상품들이 쏟아지는 힘겨운 레일을 벗어나 잠시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유난히 높고 푸르다. 어느새 가을이 성큼 와 있었다. 이렇게 청명하고 아름다운 하늘아래서 사람들이, 택배기사들이 힘겨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든다. 삶이 아무리 노엽게 하거나 힘겹게 해도 나는 저항하기로 했다. 내 처지, 내 입장에 함몰되어 살지 말고 벗어나서 나에게 배려를 베푼 수많은 선한 이웃들처럼 한결 더 풍성하고 여유롭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