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가 말했지만
"축하합니다!"
지인의 카톡이 울렸다. 브런치에 올린 '고시원 삼각김밥의 철학'이라는 글에 대한 반응이었다.
"재밌어요 ㅋㅋ" "오빠 글 볼 때마다 웃겨 죽겠어요"
민수는 뿌듯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무심코 '노벨문학상'을 검색했다.
그저 심심풀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나도 작가니까' 하는 은근한 자의식의 발로였다.
"1,100만 크로나... 17억?"
민수의 눈이 반짝였다.
"수상 연설 필수..."
그는 곧장 거울 앞에 섰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스웨덴 한림원 회원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아니다, 너무 딱딱하다. 사르트르처럼 거부할 게 아니라면, 연설은 멋있어야 한다.
"Thank you, Sweden! 김치 좋아하세요?"
이것도 아니다.
민수는 책상 앞에 앉아 노벨상에 대해 더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상 작가 명단, 시상식 드레스 코드, 만찬 메뉴, 심지어 스톡홀름까지 가는 항공편까지.
"비즈니스석은 기본이겠지..."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화려한 시상식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자신이 단상에 올라 전 세계인 앞에서 유창한 영어로 연설하는 모습. 스웨덴 국왕과 악수하는 장면. 상금 17억으로 강남에 작업실을 구하는 상상.
"아, 근데 영어 연설 연습부터 해야겠네."
민수는 브런치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글을 쓸 시간에 영어 학원이나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요즘 글 잘 쓴다며? 엄마 친구분이 아들 브런치 구독했다는데?"
"응, 엄마. 근데 나 영어 회화 학원 다니려고."
"갑자기 왜? 너 작가 한다며?"
"노벨상 받으면 연설해야 되거든."
"...뭐?"
"사르트르는 거부했지만 나는 받을 거야. 17억인데 왜 거부해?"
전화기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아들아, 김치국부터 마시지 말고 일단 글이나 써라."
"아, 엄마는 모르시네. 나 지인들이 다 재밌대."
민수는 그날도 브런치 대신 유튜브로 '노벨상 수상 연설 레전드 모음'을 정주행했다.
그의 브런치는 이미 일주일째 업데이트가 없었고, 구독자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민수의 머릿속 시상식 장면은 날로 화려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수상 소감에 김치 홍보까지 넣을 계획이었다.
"Ladies and gentlemen, have you ever tried kimchi?"
거울 앞에서 연습하는 민수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는 아직 몰랐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대부분이 수십 년간 묵묵히 글을 쓴 작가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브런치 글이 총 다섯 편뿐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괜찮다. 꿈은 자유니까.
민수는 오늘도 연설 연습에 여념이 없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사르트르가 말했지만, 망상은 현실에 앞선다."
- 작가 민수의 브런치에서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프랑스/1905년 6월 21일 - 1980년 4월 15일)
■ 지옥은 곧 타인이다(다른 사람에게 구속되는 것이 지옥이다).
Hell is other people.
■ 노를 젓지 않는 사람만이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다.
Only the guy who isn't rowing has time to rock the boat.
■ 삶은 절망의 다른 면에서 시작한다.
Life begins on the other side of despair.
■ 부자들이 서로 전쟁을 벌일 때, 죽는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When rich people fight wars with one another, poor people are the ones to die.
■ 약속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Commitment is an act, not a word.
■ 혼자 있을 때 외롭다면, 친구를 잘 못 사귄 것이다.
If you are lonely when you're alone, you are in bad company.
■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Life is C between B and D(=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
■ 자유란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갖고 당신이 실행하는 무엇이다.
Freedom is what you do with what's been done to you.
■ 인간은 현재 가진 것의 합계가 아니라 아직 갖지 않았지만 가질 수 있는 것의 총합이다.
Man is not the sum of what he has already, but rather the sum of what he does not yet have, of what he could have.
■ 언어는 장전된 권총과도 같다.
Words are loaded pisto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