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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의 역설

그의 이름은 에피메니데스

2500년 된 농담이 아직도 웃긴 이유

프롤로그: 한 남자의 단순한 말 한마디

기원전 6세기, 크레타 섬의 한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그의 이름은 에피메니데스. 그리고 그는 크레타 사람이었다.

이 단순해 보이는 문장 하나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학자들을 괴롭히고, 수학자들을 당황시키고, 프로그래머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왜일까? 이 문장이 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걸까?


1부: 뱅글뱅글 도는 생각

당신이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처음 들었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다.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구나"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어? 그런데 에피메니데스도 크레타 사람 아니야?"

그 순간, 당신의 뇌는 이상한 루프에 빠진다.


첫 번째 시도: "좋아, 에피메니데스의 말이 진실이라고 가정하자.

그럼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그런데 에피메니데스도 크레타인이니까... 그도 거짓말쟁이다.

그럼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이네? 어? 그럼 처음에 진실이라고 가정한 게 틀렸잖아?"


두 번째 시도: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보자. 에피메니데스의 말이 거짓이라고 하면...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가 거짓이니까, 적어도 어떤 크레타인은 정직하다는 뜻이다.

근데 에피메니데스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는 거짓말쟁이 맞네? 그럼... 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어!"

이게 바로 역설(paradox)이다.

뱅글뱅글 돌기만 하고 출구가 없는 미로.

생각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


2부: 우리는 매일 에피메니데스를 만난다

"2500년 전 철학자의 말장난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오늘 아침에도 에피메니데스를 만났을 것이다.

아침 7시: 엄마의 한마디

"너는 항상 '항상'이라는 말을 쓴다니까!"

이 말이 진실이라면, 엄마도 지금 '항상'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럼 엄마 말도 들어맞네? 아니 잠깐, 그럼 이게 모순 아냐?


오전 10시: 회의실에서

팀장: "우리는 더 이상 불필요한 회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회의 주제는... 회의 줄이기입니다."

모두: "......"


점심시간: SNS에서

게시물: "관종 진짜 싫음. 좋아요 누르고 공유 좀 해주세요❤️"

댓글: "이거 역설 아님?"


저녁 8시: 넷플릭스 앞에서

자신에게: "오늘은 일찍 자야지. 그전에 에피소드 하나만 더..."

(새벽 3시)

자신에게: "내일은 진짜 일찍 잘 거야."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작은 에피메니데스가 되어 자기모순적인 말을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3부: 왜 이 역설은 중요한가?

철학자들의 악몽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철학자들에게 큰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참도 거짓도 아닌 문장이 존재한다는 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문제를 더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그가 만든 이발사의 역설은 이렇다:

어떤 마을에 이발사가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면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면도해 준다"는 규칙을 따른다.

그럼 이발사 자신은 누가 면도할까?

자기가 자기를 면도하면: "자기를 면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니까 자기를 면도하면 안 됨


자기가 자기를 면도하지 않으면: "자기를 면도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자기를 면도해야 함


이발사는 면도기를 들고 거울 앞에서 얼어붙었다.

이 역설 때문에 러셀은 수학과 논리학의 기초를 완전히 재구성해야 했다. 정말로.




프로그래머들의 버그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본 사람이라면 무한 루프(infinite loop)를 경험했을 것이다.

while (이 조건이 거짓이 아닐 때까지) { 이 조건을 거짓으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시도하는 과정에서 조건이 다시 참이 된다 }

프로그램이 멈춘다. 팬이 돌아간다. 컴퓨터가 뜨거워진다. 이것이 바로 에피메니데스 역설의 현대판이다.

재귀(recursion)는 프로그래밍의 강력한 도구지만, 잘못 사용하면 프로그램을 무한 루프에 빠뜨린다. 마치 에피메니데스의 문장을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애매함을 받아들이자"

현대의 일부 논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것들이 있다. 그냥 받아들이자."

에피메니데스의 문장은 진리값이 없는 문장이다. 마치 "소리는 무슨 맛이야?"라는 질문이 답이 없는 것처럼.

이 해결책의 문제: 뭔가 찜찜하다. 논리학은 명확성을 추구하는데, "애매함"을 답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나?



유머로 승화하기

가장 건강한 대응은 아마도 유머일 것이다.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아마 웃었을 것이다. "내가 한 말 때문에 2500년 동안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니!"


에필로그: 거짓말쟁이에게 배운다

어느 날 제자가 현인에게 물었다.

"스승님,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현인이 답했다.

"해결할 필요가 없다."

"왜요?"

"왜냐하면..."

현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믿지 마라."

제자는 혼란스러웠다. "그럼 지금 하신 말씀도 안 믿어야 하나요?"

현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그럼 믿어야 하는 거네요?"

"그렇다."

"그럼 안 믿어야..."

"자, 네가 깨달음을 얻었구나."

"뭘 깨달았는데요?"

"모르겠으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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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브런치 글을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나는 브런치 작가다

작가는 거짓말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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