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쉬에서 진짜 영어까지

북클럽 이야기


프롤로그: 2018년, 그 시작


2018년 봄, 우리는 몰랐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묶어둘 줄은.

기억 전달자 the giver를 펼치며 시작된 북클럽이 Maya Angelou의 《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로 어느새 7년 차를 맞고 있다.


처음엔 다들 어색했다. 영어 원장님은 완벽한 발음으로, 자영업을 하시는 분은 비즈니스 영어로, 평범한 주부는 생활 영어로, 그리고 한국 남자와 결혼한 영어강사는 교육자다운 정확함으로 각자의 영어를 들고 왔다.


1장: 원어민들의 등장과 콩글리쉬의 현실


가장 큰 변화는 Cape Town 출신 원어민 강사들이 합류하면서부터였다.

"이케아 가자!""어디요?""이케아... IKEA...""아, 아이키아!"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만날까요?""트레이더스가 뭐예요?""E-MART Traders...""아하! 이마트 트레이더스!"

심지어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도..."에펠탑 같은 곳 말이에요.""에펠?""Eiffel Tower!""아, 아이펠 타워!"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배운 영어와 실제 영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2장: Schedule vs 쉐줄, Water vs 워터


더 충격적인 건 같은 영어권이라도 발음이 달랐다는 점이다.

미국 출신 강사: "Let's check our schedule(스케줄)."영국 출신 강사: "What's on the schedule(쉐줄) today?"

"Can I have some water(워러)?" vs "Could I get some water(워터)?"

우리는 웃으며 깨달았다. 영어도 방언이 있고, 우리가 배운 '표준 영어'라는 것도 사실은 하나의 버전일 뿐이라는 것을.


3장: 대학 시절 영국에서의 기억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영국 유학 첫날, 미국식 영어로 A부터 Z까지 외운 나에게 영국 영어는 마치 암호 같았다.

"I'm a student, "라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반 친구들이 "Pardon?" 하며 되묻던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켜버리던 그 답답함.

그때 만난 일본 친구 아키코. 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오히려 편했다. 서로의 '불완전한' 영어를 이해해 주었고, 틀려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You are writer!" 아키코가 내 일기를 보며 말했던 그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난다.


4장: 파인애플 케이크와 강아지 간식


북클럽의 진짜 매력은 책 너머에 있었다. Maya Angelou의 3장에서 "pineapple rings for rich upside-down cake"가 나오자, 다음 모임에 정말로 파인애플 업사이드 다운 케이크를 들고 온 분이 있었다.

애견을 키우시는 분은 수제 강아지 간식을 만들어서 강아지 키우는 다른 회원에게 나눠주셨다. 부활절엔 달걀 장식을, 크리스마스엔 파티를, 봄가을엔 피크닉을.

책 한 권이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들고, 우리의 일상이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 같은 순환.


5장: 6명의 중년 여성들과 변화하는 멤버들


어느새 20대, 30대 멤버들은 하나둘 떠나고 중년 여성 6명만 남았다. 영어강사들도 1년 계약이라 계속 바뀌지만, 우리 코어 멤버들은 꿋꿋이 버텨냈다.

처음엔 조심스러워했던 원어민 강사들이 이제는 오히려 모임을 주도한다. 그들도 우리의 콩글리쉬를 사랑하게 되었고, 우리도 그들의 진짜 영어에 익숙해졌다.


에필로그: 콩글리쉬도 우리의 언어


7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안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소통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스케줄'이든 '쉐줄'이든, '에펠'이든 '아이펠'이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언어의 벽은 생각보다 낮다는 것을.

아키코가 말했던 "You are writer!"처럼, 때로는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달하는 말이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될 수 있다.

북클럽은 계속된다. 새로운 책과 함께,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그리고 우리만의 '콩글리쉬'와 함께.


"A book is a heart that only beats in the chest of another."- Rebecca Solnit

우리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영어 단어를 읽을 때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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