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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인구조사, 사람을 만나다

14개의 문, 14개의 세계



오늘 점심 후, 나는 14 가구의 조사를 완료했다. 숫자로는 14개지만, 그 안에는 14개의 삶이, 14개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었다.

1부: 침묵하는 건물

협택단지의 20분

우편물이 쌓인 좁은 현관.

1층 문 앞에서 나는 모든 호수의 벨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경비실도 없었다.

누군가 나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건물.

나는 그저 서 있었다.

20분.

혹시 누군가 나올까.

혹시 퇴근하시는 분이 계실까.

울리지 않는 벨 앞에서 기다리는 20분은 참으로 길었다.

결국 그날 그 건물의 조사 완료 가구 수는 0이었다.


다음 건물로 향했다.

현관에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는 나가시는 분께 "문 어떻게 들어가나요?"라고 물었더니 "여기 비밀번호 적혀 있어요"라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하지만 오늘은 뭘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지 몰라 또다시 누군가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나오시는 분이 계셨고, 나는 들어갈 수 있었다.

각 호실마다 내 연락처가 적힌 홍보물을 붙였다.

한 건물에 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다행이었다.


2부: 만남과 거절 사이

계단에서 짐을 나르는 분을 만났다.

"죄송한데요, 인구주택총조사인데..."

"바빠요."

그렇게 돌아서시는 등을 바라보며, 나는 다음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빨간 우체통의 기적

또 다른 건물. 빨간 우체통에 우편물이 가득했다. 인구조사 우편물의 호수만 확인하려고 하나씩 꺼냈다.

그런데 우편물뭉치 봉투모두에서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독특한 이름이었다. 몇 번 만났던 분이었다.

설마... 싶어 연락을 해봤다.

"혹시... 이 건물이...?"

"아, 거기 제가 건물주예요."

말로만 듣던 건물주. 원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의 주인. 부러움이 밀려왔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사정을 이야기했다.

"지금 인구조사를 하고 있는데, 도움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방 2개만 공실이예요. 나머지는 다 사람 있어요."

한 달 월세만 해도 얼마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그분의 독특한 이름 하나를 기억했던 것만으로 2 가구가 해결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었다.


3부: IT단지의 월요일

IT단지의 원룸들. 한 청년이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저도 이웃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겠어요."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숙박만 하는 사람들.

주말에는 집에 가서 방이 텅 비어 있다고 했다.

"월요일 퇴근 후에 오시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정보였다. 그것도 조사였다.


4부: 아파트, 사람들의 온도

아파트로 향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반갑게 맞아주셨다.

"수고하시네요. 들어오세요."

태블릿을 켜고 질문을 드리면, 천천히 대답해 주시는 그분들. 함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젊은 분들은 달랐다.

"QR코드 있죠? 알아서 할게요."

띵동을 눌러도 문 자체를 열어주지 않는 집들. 조사 진행은 너무 느렸다. 전화, 인터넷, 현장조사 모두 가능하지만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사전 조사는 겨우 10%였다.


5부: 의심과 신뢰 사이

한 분은 조사가 끝난 후 물었다.

"뭐 이렇게 자세하게 조사해요? 좀 의심스러운데."

내 전화번호를 받아 적으시고, 사인까지 받으셨다.

진짜 설문조사가 맞는지 확인해 보신다고 하셨다.

"통장입니다."

신분을 밝히자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셨다.

온도가 다른 사람들

"수고하십니다."

끝인사까지 건네시는 분이 계신가 하면,

"귀찮아! 왜 자꾸 와!"

인터폰으로 화를 내시는 분도 계셨다.

기숙사에 남자 세 분이 함께 사는 집은 따로따로 조사해야 했다.

독촉 전단지를 아무리 붙여도 무시하고 떼는 집도 있었다.

우편물을 아예 뜯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6부: 낮아지는 자존감, 높아지는 이해

이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질 때가 있었다.

왜 나는 지금 문 앞에서 20분을 기다리고 있을까.

왜 나는 지금 거절당하고 있을까.

왜 나는 지금 의심받고 있을까.

하지만 어르신들의 대답을 태블릿에 받아 적으며, 그분들의 삶을 듣으며,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조사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통장 일을 하면서 많은 가구를 돌아다녔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상처를 쉽게 회복하는 노하우, 사람을 대하는 태도, 거절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법.


에필로그: 알바가 아닌 수업

이것은 알바가 아니었다. 수업이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다.

나를 돌아보는 법을 배웠다.

사람마다 다른 온도로 살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14 가구. 오늘의 숫자.

하지만 그 안에는 20분의 기다림이 있었고, 빨간 우체통의 기적이 있었고, "수고하십니다"라는 따뜻한 말이 있었고, 의심의 눈빛이 있었고, 함께 숨 쉬는 순간이 있었다.

발품을 팔아 얻은 14개의 완료.

그것은 숫자가 아니라, 14개의 문을 두드린 용기였고, 14번의 만남이었고, 14개의 세계를 엿본 경험이었다.

내일도 나는 다시 골목길로 나간다.

누군가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혹시 몰라, 20분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저자의 말


인구주택총조사. 딱딱한 이름 뒤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문을 열어주는 사람, 거절하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격려하는 사람. 모두가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조사원의 기록이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는 사람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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