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택단지의 밤 – 문 앞에서 배우는 인내
낮의 협택단지는 유난히 조용하다.
사람이 사는 흔적은 있지만,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불 켜진 방은 없고, 복도에는 쌓인 택배 상자들만 무심히 자리한다.
대부분 이곳은 숙소처럼 사용되는 원룸촌이다.
낮에는 텅 비고, 밤이 되어야만 불이 하나둘 켜진다.
공동현관 인터폰은 고장이 나 있었다.
밖에서는 아무리 눌러도 벨이 울리지 않았다.
누가 나오기만, 혹은 누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문 앞에서 서 있던 어느 날, 배달기사 한 분이 다가왔다.
그분도 나처럼 벨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비밀번호는 주문서에 적혀 있던데… 뭐부터 눌러야 하죠?”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 시도했다.
결국 고객과 통화해 ‘공동현관 여는 법’을 알아냈다.
그의 어깨너머로 조심스레 그 순서를 배워 노트에 적었다.
그날 배달원님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경비 없는 협택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그날은 감동이었다.
건물 안을 돌며 벨을 누르고 또 눌렀다.
문이 열리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옆방에서 나오던 한 분이 말했다.
“그 집은 사람이 안 사는 거 같아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대답 한 번’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쁜 숨소리와 함께 한 여성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기요, 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깐만요!” 하고 영어로 말을 걸었다.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베트남 사람이라고 했다.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사장님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한마디 뒤에는 수많은 사연이 숨어 있었다.
그녀를 붙잡을 수도, 더 묻고 싶지도 않았다.
겁먹은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서늘해졌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서류 위의 ‘거주자 미응답’이라는 네 글자가
그날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다른 건물로 옮겨 또 문을 두드렸다.
한참 뒤, 문이 살짝 열리더니
웃통 벗은 남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나도 그도 동시에 얼어붙었다.
“큐알코드로만 찍어드릴게요. 금방 끝나요.”
내가 사정을 하자 그는 부끄러운 듯 문을 닫았다가
옷을 입고 다시 나왔다.
그가 문을 다시 열어준 그 순간,
그 어떤 응답보다 감사했다.
또 다른 집에서는 벨을 여러 번 누르자
문 안에서 화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야 하는데 시끄럽게 왜 이렇게 눌러요!”
“죄송합니다.”
작게 고개를 숙이고, 배운 대로 말했다.
“조금만 협조해 주시면 금방 끝납니다.”
그 말에 그는 마지못해 문을 열었다.
설문이 시작되자, 그는 또 화를 냈다.
“이런 걸 왜 다 물어봐요? 사생활 침해 아냐?”
나는 매뉴얼대로 답했다.
“불편하실 수 있지만, 국가 통계를 위한 조사입니다.”
아슬아슬한 대화 속에서 나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조금만 더 하시면 끝납니다.”
그렇게 설득하며 마지막 문항을 마쳤을 때,
마치 어려운 게임을 깬 것처럼 손끝이 떨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인사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조사관의 하루는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고, 거절당하는 일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 문 앞마다 작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누군가는 피곤해서 화를 내고,
누군가는 두려워서 대답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그저 낯선 방문에 놀란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문을 두드린다.
닫힌 문 너머에도,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이 열리는 단 한순간을 위해,
나는 다시 골목을 돈다.
“이 일은 숫자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