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본다
중앙일보 기자님이 메일을 보내주셨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인터뷰는 낯설고 내가 편한 그냥 브런치에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해보자!
조사원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였다.
어느 날, 홍보전단지에 적힌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요원 모집’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나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조금은 멈춰 서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동시에 나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사람을 만나보자.”
단순히 일자리를 찾던 게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에 마음이 끌렸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고, 그 안의 이야기를 듣고, 조심스레 기록하는 일.
그 자체가 하나의 ‘사람 공부’였다.
올해가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을 했다.
그때는 모든 게 낯설고 긴장됐다.
초인종을 누르고, 인터폰 너머로 “누구세요?”라는 말이 들리면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올해 다시 지원한 건, 작년의 경험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 ‘배움의 시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교육 시간이 즐거웠다.
태블릿 사용법을 배우고, 조사 요령을 익히는 동안 스스로가 ‘공적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뿌듯했다. “국가 통계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 어쩐지 멋있게 들렸다.
하지만 실무에 들어가자 금세 현실을 알았다.
한 건물의 문 앞에서 20분을 서 있어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퇴근길의 사람들은 나를 스쳐 지나가며 “바빠요” 한마디만 남겼다.
밤이 되면 골목의 조명 아래서 혼자 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 일은 숫자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라는 걸.
가끔은 거친 말을 듣기도 했다.
“귀찮다고 했잖아요!”
인터폰 너머로 쏟아지는 말들은 금속성 소리처럼 차가웠다.
어떤 분은 욕설을 하기도 했다. “내 정보 왜 물어봐요?” 하며 문을 닫아버린 이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누군가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를 버티게 한 건, 또 다른 순간들이었다.
어떤 어르신은 “수고하시네요, 들어오세요” 하며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어떤 청년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몰라요.
다음에 오세요” 하며 시간을 내주었다.
그 한마디, 그 짧은 온기가 하루의 피로를 녹였다.
물론 무서운 순간도 있었다.
낯선 건물, 좁은 계단, 복도 끝의 어두운 문 앞에서 혼자 서 있을 때면 심장이 빨리 뛰었다.
가끔 술에 취한 사람을 만나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늦게 조사 다니면 욕먹는다”는 말은 절반은 농담이지만 절반은 진심이었다.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건 할당량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하루를 비워두기 싫어서’였다.
만나지 못한 한 사람, 닫힌 한 문이 마음에 남았다. 그 문을 다시 두드리고 싶었다.
조사관으로서 가장 묻기 어려운 질문은,
“여기 혼자 사시나요?”였다.
그 질문에는 사람의 사정이 숨어 있었다.
이혼 후 혼자 사는 분도, 외국에서 온 청년도, 홀로 남은 어르신도 있었다.
그 한 문장을 건넬 때마다, 나는 그들의 삶의 문을 살짝 열어보는 기분이었다.
어떤 분은 “네, 이제는요.” 하며 짧게 웃었고, 어떤 분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 침묵마저, 삶의 이야기였다.
가끔은 주변 조사원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분은 인터폰 너머로 욕설을 들었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위협적인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목을 잡혔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 날 다시 나섰다.
왜일까. 아마도, 그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며 나는 조금 달라졌다.
처음엔 숫자를 채우는 일처럼 느꼈지만, 지금은 마음을 채우는 일로 남았다.
사람을 기다리는 법, 거절당해도 웃는 법, 의심받아도 내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알바’라고 부를 수 없다.
이건 수업이었다.
사람을 배우는 수업, 기다림을 배우는 수업, 그리고 나를 배우는 수업.
내일도 나는 골목길로 나갈 것이다.
혹시 몰라, 20분쯤은 더 기다릴 것이다.
누군가의 문이 열릴 때,
그 문 너머에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사원
“나는 사람을 조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을 배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