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시작된 이야기

작가와의 만남 -편지로 글쓰기

편지로 시작된 이야기

1.

도서관에서 나온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윤성희 작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편지는 가장 오래된 글쓰기이자 가장 진솔한 글쓰기입니다."

수첩에 끄적인 메모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편지는 독자가 명확하다', '대화하듯 쓰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동안 내가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싶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글이 쉬워 보였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작가가 숙제로 내준 것은 간단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것. 그런데 누구에게?

문득 서랍 깊숙이 넣어둔 메모지가 떠올랐다. 대학교 때 썼던 메모지 묶음. 그 안에는 내가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다.. 결국 선택받지 못했던 첫사랑.


2.

친구야,

갑작스러운 편지에 놀랐을 거야. 사실 나도 이 편지를 쓸 줄 몰랐어. 오늘 글쓰기 강의를 들었는데, 편지로 글을 쓰라고 하더라고. 처음엔 엄마한테 쓸까 했다가, 문득 네가 떠올랐어.

기억하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지. 너는 지방으로 군대를 가버렸고 연락을 끊었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상해.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 그때 못한 말들이 술술 나와. 선생님이 맞았나 봐. 편지는 마법 같은 거라고 했는데.

펜을 잠시 멈췄다. 강의실에서 윤성희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편지는 시간을 뛰어넘는 소통입니다. 과거의 나, 미래의 나, 그리고 만날 수 없는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어요."


3.

친구야, 너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사실 너를 좋아했어. 널 알게 된 후 학교 내내. 이유 없이 좋았고, 너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괜히 행복했어. 바보 같지?

난 너한테 편지를 쓴 적이 있어. 내 마음을 다 담은 편지였는데, 결국 건네지 못했어. 용기가 없었거든. 그 편지는 아직도 내 이메일 안에 있어.

오늘 강의에서 선생님이 그러더라고. 편지는 보내지 않아도 의미가 있다고.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된다고. 정말 그런 것 같아.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어.

너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꿈꾸던 일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아.


4.

다음 날, 나는 다시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대학교 때의 나에게.

20살의 나야,

너는 지금 친구를 좋아하고 있구나. 마음이 아프고 설레고 복잡하지? 괜찮아. 그 마음 다 소중해. 그런데 하나만 말해줄게. 좀 더 용기를 내봐. 고백하라는 게 아니야. 그냥 네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봐.

오늘 어른이 된 나는 편지 쓰는 법을 배웠어. 편지는 시간을 뛰어넘는 마법 같은 거라고. 너도 친구한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보내지 않아도 괜찮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될 거야.

그리고 하나만 더. 네가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들, 그 모든 순간들이 너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5.

일주일 후, 나는 세 번째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윤성희 작가에게.

선생님,

지난주 강의를 들은 수강생입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편지를 써봤습니다. 처음엔 첫사랑에게, 그다음은 과거의 저에게, 그리고 지금은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고 있네요.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제가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려나왔어요. 마치 오랫동안 꽁꽁 묶여 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편지는 정말 마법 같은 거였어요. 독자가 명확하니까 글이 쉬워졌고, 대화하듯 쓰니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마음이 정리되었어요.

이제 저도 편지로 다른 글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일기도 편지 형식으로, 소설도 편지 형식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편지로 글을 쓰는 법을 알려주셔서.


6.

한 달 후, 나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에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저는 한 달 전 편지로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쓰면서 깨달았어요. 모든 글은 결국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걸요.

소설도, 시도, 에세이도 모두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다만 우편배달부 대신 출판사가 그 편지를 전달해 줄 뿐이죠.

당신도 한번 편지로 글을 써보세요. 누군가에게, 과거나 미래의 자신에게, 아니면 상상 속의 누군가에게라도. 분명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예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편지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요. 마음만 진솔하면 됩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편지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제 나는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고.

편지로 시작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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