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지 않은 남편 복사판
오늘따라 날씨가 따뜻하구나.
3년 전 언니가 쓰던 보온도시락을 꺼내며, 엄마는 네게 고마운 마음이 밀려왔어.
올해는 내가 너무 바빠서 밥 한 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지.
문과라고 고3 때 수학 학원도, 그 어떤 학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너는 묵묵히 스스로 공부했어.
사춘기 한 번 없이 그냥 조용히, 착하게 지나가준 너.
정말 고맙다, 우리 딸.
네가 태어났을 때 생각나니? 4.5킬로그램의 통통한 아기.
신생아실에서 유난히 컸던 너를 보며 엄마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1월 초 생이라 키도 크고, 12월생 안 만들려고 조심했던 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황금돼지띠라 경쟁률만 높았지만, 그래도 너는 너였어.
백일쯤 됐을 때 코 옆에 딸기처럼 빨간 혹이 생기기 시작했지. 혈관종.
그때 엄마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너는 모를 거야.
여자아이 얼굴에 점점 커져가는 혹을 보며, 백일 갓 넘은 아기를 안고 서울까지 올라가 유명한 피부과를 찾아다녔어.
시술 후 얼굴에 멍이 들고 파랗게 변한 네 모습.
어린이집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아팠어.
내 자식이지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차마 보기 힘들었던 날들.
돌도 안 된 아기가 얼굴에 레이저를 맞으며 울부짖을 때, 엄마도 함께 울었어.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라고 했을 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자라면서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에 매달렸던 그 시간들.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넌 자라면서 이렇게 멋진 아이가 되었구나.
엄마와는 달리 손재주도 많고, 속옷 하나 개는 것도 나보다 꼼꼼하게 잘하지.
요리도 잘하고, 심성도 곱고. 다이어트한다며 스스로 양배추 요리를 만들어 먹고, 공부도 혼자 알아서 척척 해내는 너.
언니 때는 받아쓰기 100점 받게 하려고 엄마가 얼마나 애썼는지 아니?
첫째라서 정말 공부에 신경을 많이 썼어.
그런데 둘째인 너는 스스로 너무 잘해줘서, 키우면서 야단친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야생형으로, 방관형으로 키워도 스스로 잘 자라준 우리 딸.
너를 보면 정말 시집 안 보내고 평생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어.
내일이면 수능이구나.
엄마가 많이 챙겨주지 못했지만, 네가 지금껏 스스로 걸어온 그 길들을 엄마는 다 알고 있어.
묵묵히, 꾸준히, 흔들림 없이 걸어온 너의 노력을.
내일은 그냥 네 실력을 보여주면 돼.
긴장하지 말고, 네가 그동안 준비한 걸 차분하게 풀어내렴.
엄마는 네가 어떤 결과를 받아와도 자랑스러워.
이미 네가 걸어온 길 자체가 엄마에게는 큰 감동이고 자랑이니까.
고3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냥 네 엄마로서 말할게.
우리 딸, 정말 고맙고 사랑해.
내일 수능, 파이팅!
넌 할 수 있어. 잘 보고 와.
사랑하는 엄마가
수능 선물 챙겨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의용소방대에서
고시원 원장님
수학학원 선생님
임리나샘
봉경샘
동원맘
시부모님
고모
너를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았다는걸 기억해 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