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 선물 꾸러미
마지막 중학생 학부모 활동이 남긴 작은 깨달음
셋째 아이까지 8년을 한 학교에 다니며 학부모로 지냈지만, 사실 학교 행사에는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일이 바빴고, 첫째가 중2 때부터 다녀서 그런지 어느새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무슨 모임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1시간 30분 정도면 끝날 거라는 말만 듣고 참석하겠다고 했다.
다른 약속도 생겼지만, 먼저 한 약속이니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학교에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해 보니 기말고사를 앞둔 아이들에게 줄 격려 선물을 준비하는 자리였다.
비닐봉지에 수정테이프, 사인펜, 사탕, 간식을 담는 일.
전교생 분량이라니 만만치 않은 양이었다.
임원이 10명인데 그날은 5명만 참석했다.
나도 손이 빠른 편이고 이런 일은 여러 번 해봐서 자신 있었다.
하지만 막내 부모로 참석하니 나보다 젊은 엄마들의 손놀림은 더 빨랐다.
10시에 시작한 작업은 쉬는 시간도 없이 척척 진행됐다.
나 혼자 의자에 앉아 물건을 담는데, 흰색 수정테이프의 글씨가 앞으로 보이게 담아야 한다는 걸 미처 몰랐다. 몇 개를 반대로 담았더니, 옆에서 디자인부터 상품 선정까지 고생하신 임원분이 조용히 다시 정리하셨다.
순간 기분이 살짝 언짢았다. '어차피 애들은 글씨 따위 신경 안 쓰고 젤리만 쏙 빼먹고 버릴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준비하시는 분들이 문구 하나 고르는 데도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간을 쏟으셨을까. 이왕이면 글씨가 잘 보이게 담는 게 맞는 일이었다.
아침도 거르고 와서 배가 고팠다. 12시 30분이 넘어도 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베테랑처럼 일하셔서 나 혼자 쉴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내일이 수능이라 학교가 일찍 끝난다는 사실도 몰랐다.
일 끝나고 점심 먹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오전 수업만 하고 하교한다며 우리도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다.
결국 2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일했더니 손가락 마디가 저렸다.
집에 돌아와 손을 펴보며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아온 작은 선물 꾸러미 하나하나에, 이렇게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이 담겨 있었구나.
아무런 보수도 없이, 그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봉사하시는 부모님들.
오늘 처음 제대로 그 마음을 느꼈다.
막내의 마지막 중학교 학부모 활동이 될지도 모를 이날, 나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더 큰 선물을 받고 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응원하는 분들의 마음. 그 따뜻함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