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순이의 갈등
수요일에 중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식이 겹친다. 3년 전이 떠올랐다.
그때는 졸업식 날짜가 3일 이상 떨어져 있었고, 나는 꽃다발 하나로 버티려고 했다.
꽃이 시들면 안 된다며 마음 졸이며 하나를 구입헀는데,
어느새 새로운 꽃다발이 들어와서 여러 개를 들게 되었던 그 기억 말이다.
이번엔 다르다.
같은 날이다.
꽃다발 두 개는 피할 수 없다.
점심 약속이 있어 상가에 들렸다.
꽃값을 물었다.
7만 5천 원이었다.
그렇다고 풍성하지도 않았다.
지난주에 비해 만 원에서 2만 원 사이로 꽃값이 급등해 있었다.
맘카페에서 꽃다발을 검색했다.
어느 꽃집이 좋은가, 알아봤다. 전화를 드렸다.
"아, 카페에 올라온 사진들은 그 가격에 못 드려요. 가격이 올랐거든요."
지금 너무 바빠서 상담도 못 된다고 했다.
한창 시즌이니, 얼마나 바쁘겠는지 상상이 갔다.
당근에도 꽃다발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만 원에서 3만 원 사이. 반값에 팔고 있었다.
한나절 사진 찍고 당근에 파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사기 위해 검색하는 사람이 있고.
지인은 화훼단지를 돌다가 5만 원짜리를 예약했다.
실시간으로 꽃다발 사진을 전송해 준다
오늘 저녁 내내 꽃다발을 서치 했다.
몇 시간이 지나갔다.
그 순간, 문득 한심스러웠다.
3년 만에 사는 꽃다발 하나에, 나는 이렇게 돈을 아낀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뭘 아껴야 하는가.
왜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는가.
내 성격이다.
알고 있다.
십 원 한 장도 가성비 좋게 써야 내 맘이 편하다.
음식점에서도 영수증 리뷰를 해서 음료수 캔 하나를 받아야 마음이 풀린다.
예전엔 이런 나를 "알뜰하다"라고 칭찬해 줬다.
하지만 요즘엔 어떨까. "인색하다" "구두쇠"라는 평판이 더 어울리게 느껴진다.
시어머니를 생각했다.
화장실 갈 때도 불을 안 키시는 분.
발톱만큼의 낭비도 본인에게 허락하지 않으시는 분.
그에 비하면 나는 양호하다.
충분히 양호하다.
내 근검절약을 칭찬해 본다.
그렇게 자족했다.
하지만 정직해지고 싶다.
요즘 나는 발가락이 삐져나온 꿰맨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매끈한 새 신발이 아니라, 이미 낡아가는 그것을.
남들은 뭐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환경보호 실천주의자"의 선택이라고 자칭한다.
편한 건 맞지만, 사실은 정이 갔을 뿐이다.
예전의 나는 어땠던가.
속옷에 구멍이 나면 "그 옷 좀 버려라"라고 외쳤다.
"군대 있을 때 자수로 이름이 적혀 있다고 버리지 말라던 남편 생각이 났다"
낡은 옷이 보이면 고개를 저었다. 남편의 옷차림을 평가하던 사람. 그게 나였다.
지금 나는 그 낡은 옷들이 편하고 정이 가고 애착이 간다.
같은 행동이 어떨 땐 "알뜰함"이고 어떨 땐 "궁색함"이 될까.
세상의 잣대는 자꾸 바뀐다.
하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 깨달았다.
나는 내게 너무 싸구려만 줬다.
한심스럽다.
미련하다.
하지만 그런 나, 소비를 최소화하고 물건 하나에도 정을 주는 그런 나를, 한 번쯤은 사랑해 봐야 할 것 같다.
과연
수요일 두 자녀의 졸업식 날, 나는 어떤 꽃을 들 것이다. 중고꽃이든 발품 팔은 꽃이든 다이소에서 꾸미려고 산 조화 2묶음 3천 원 꽃이든
잘 해낼 거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성실하게.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