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승인이 안 나던 그날, 나는 작은 갈등을 겪었다.
필라테스냐, 브런치 요리냐.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역시 먹는 게 남는다는 평범하지만 진리 같은 말이었다.
평생장학금으로 브런치 요리 수업에 등록했다.
처음엔 3명이 신청했지만, 5명이 모이지 않으면 연기된다는 선생님 말씀에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결국 8명이 모였다.
새댁부터 베테랑 주부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60대 선생님은 척척 손이 움직였다.
칼질 하나도 정확하고, 손놀림이 기계 같았다.
내 짝꿍 언니는 더 대단했다.
출장요리 자격증을 가진 능력자였는데,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구직활동의 증거로 이 수업에 다니고 있었다. 사실 이 반의 대부분이 내일 배움 카드 소유자였다.
실직자들이 취업까지의 징검다리로 이 수업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3시간 수업인데 요리는 1시간이면 끝나요."
선생님의 말에 처음엔 의아했다.
하지만 곧 이해가 됐다.
출석카드를 정해진 시간 내에 찍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3시간을 꽉 채워야 했다.
나만 빼고 말이다.
나는 젤 늦게 와서 젤 먼저 퇴근하는 자유인이었다.
짝꿍 언니와의 조 편성은 흥미로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민망했다.
언니는 꼼꼼했다.
설거지해 놓은 것도 한 번 더 다시 물로 헹굼질 하고, 냄비도 싹싹 닦아낸다.
물을 끓여서 열탕 소독까지 한다.
그런데 나? 나는 "어차피 입에 들어가는 거 같은데?"라는 철학으로 무장한,
설거지를 최소화하려는 자유인이었다.
재료 계량도 그랬다.
언니는 그램수를 정확히 재었고, 나는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줌, 두 줌 집어넣었다.
야채를 다질 때는 더 극명했다.
언니의 칼질은 정말 기계처럼 예뻤다.
반듯하고, 곱고, 균등했다.
나는 어때? 이유식 할 때도 대충 했고, 평소에도 과일 깎는 건 남편이 한다.
칼질은 남편 담당인 집이었다.
재료를 따로 구분해서 보관할 때도 언니는 신경 썼지만, 나는 그냥 한 번에 다 넣어서 볶았다.
토마토를 자르는 방식도 달랐다.
내가 꼭지만 따면 끝이지만, 언니는 밑동까지 정확히 잘라낸다.
빨간 부분도 최대한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버섯 꼬리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다 쓴다. 처음 봤을 때 나는 놀랐다.
'아, 나는 얼마나 낭비를 하고 살았던 거지?'
같은 재료를 받고,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는데 결과가 이렇게 다르다니.
에그베네딕트를 만들 때, 원래 레시피는 수란을 만들어서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를 했다.
'어차피 내가 먹을 건데?'
내 레시피로 당당하게 변형해서 만들었다.
종강날이 됐다. 선생님은 떡볶이를 만들어주셨다.
"여러분, 우리 반은 정말 특별해요."
수료식이 되자, 선생님은 만족도 조사에서 '매우 만점'을 계속 언급하셨다.
우리 반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 시연만 보여드리면 알아서 척척 다 하세요. 정말 손이 안 가는 반이에요."
그리고는 웃음을 지으셨다.
"이쁘다고 재료도 더 드릴게요."
다른 반은 빵 밑바닥만 반쪽 주는데, 우리 반에는 위 뚜껑도 줬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우리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예쁜 놈에게는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선생님도 우리 반의 진심 어린 참여와 모습이 예뻐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이 요리 수업을 통해 나는 확고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요리 쪽은 아니다.
정확한 칼질, 철저한 위생관념, 남은 재료까지 아끼는 마음. 그 모든 것이 나와는 다른 세계였다.
하지만 그런 짝꿍 언니와 함께하면서 나는 세상에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2026년 새해를 시작한 나에게 첫 번째 수료증이 늘어났다.
평생장학금으로 얻은 경험, 그리고 배운 것 이상의 깨달음.
다음에는 운동 수업, 꼭 들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