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전문가
새벽밥 한 지 반백년이 넘었다
그는 늘 새벽에 일어났다.
해가 뜨기 전, 세상이 아직 말을 걸기 전의 시간.
그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루가 시작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자수성가라는 말은 그의 등뒤에 붙은 훈장이었지만, 사실 그 훈장은 늘 밥그릇 위에서 반짝였다.
밥이 늦으면 일이 늦어졌고, 밥이 성에 차지 않으면 하루가 어긋났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내는 그보다 먼저 일어났다.
솥에 물을 붓고, 쌀을 씻고, 손바닥으로 쌀알을 문질러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반백년이 넘도록 반복된 몸의 기억이었다.
새벽의 부엌은 늘 그녀의 것이었다.
가스 불이 켜지는 소리, 뚜껑이 덮이는 소리, 김이 오르는 소리. 그는 이 모든 소리를 “당연한 것”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그녀를 현모양처라 했다.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그녀의 하루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늘 남편의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그의 배고픔에 맞춰 시계를 돌렸고, 그의 일정에 맞춰 계절을 건너왔다. 밥은 그를 살게 했고, 밥을 하는 그녀는 그를 지탱했다.
그녀의 이름은 그 사이에서 조금씩 닳아갔다.
딸이 전화를 걸어온 날은 봄비가 얌전히 내리던 오후였다.
“엄마, 우리 여행 갈까?”
그녀는 잠시 말이 막혔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오래된 옷장에서 꺼낸 낯선 옷처럼 느껴졌다.
딸은 말을 이었다.
“아빠도 이제 연세가 있고, 엄마도… 다리 걸을 수 있을 때 가야지. 우리, 둘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딸의 숨이 가벼워졌다.
외동딸은 바빴고, 항상 마음만 있었다.
이번에는 추진했고, 일정을 맞췄다.
숙소를 고르고, 기차 시간을 고르고, 걷기 좋은 길을 표시했다.
모녀의 여행은 그렇게 조용히 형태를 갖춰갔다.
그녀는 그 말을 꺼내기까지 며칠을 망설였다.
밥을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새벽을 넘기면서.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밥상이 차려진 뒤에 말했다.
“나, 딸이랑 여행 좀 다녀오려고.”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잠깐의 침묵.
밥 위로 김이 올라왔다.
그 김 사이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왔다.
“내 밥은 어떡하고?”
그 말은 칼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깊이 박혔다.
그는 그 말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밥은 생존이었고, 생존은 늘 먼저였다.
그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딸에게 전화가 갔다. “이번엔… 좀 어렵겠다.”
딸은 이유를 물었고,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결국 딸이 말했다.
“아빠가 그랬구나.”
그 말에는 분노도 체념도 아닌, 오래된 이해가 묻어 있었다.
모녀의 여행은 그날로 접혔다.
일정표는 휴지통으로 갔고, 숙소 예약은 취소되었다.
그날 밤, 그녀는 부엌에 오래 앉아 있었다.
밥그릇을 씻고, 말리고, 제자리에 놓았다.
밥그릇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녀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반백년 동안 새벽밥을 했다는 것은, 반백년 동안 자신의 시간을 미뤄두었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음 날도 그는 새벽에 일어났고, 밥을 먹었다.
밥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그는 안도했다.
세상은 아직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안도.
그는 늙어가고 있었지만, 그가 먼저라는 질서는 늙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녀는 꿈을 꿨다.
기차 창밖으로 바다가 지나가고, 딸의 웃음소리가 흔들리는 꿈.
그 꿈에서 그녀는 밥을 하지 않았다.
시간은 그녀의 것이었다.
깨어났을 때, 새벽은 이미 와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쌀을 씻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아침이 되자 그는 말했다. “오늘 밥이 좀 늦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밥은 곧 차려졌다. 늘 그렇듯.
그녀는 알았다.
이 집에서 밥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굴레였다.
옛 어른들의 세대는 밥을 먼저 생각했고, 그 밥을 누가 만드는지는 오래 묻지 않았다.
그 질문이 늦어질수록, 여행은 사라지고, 꿈은 접혔다.
그는 여전히 밥을 먹는다.
그녀는 여전히 밥을 한다.
그리고 모녀의 여행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그들의 삶에서 빠져나갔다.
새벽은 또 온다.
밥은 또 지어진다.
어떤 것들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스쳐지나간다.
아궁이에서 곤노에서 까스불에서 압력솥에서 쿠쿠에서 돌솥밥으로 변했지만
그녀의 밥은 항상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