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하지 않는 불량주부


딸은 밥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밥 냄새 뒤에 따라오는 삶의 모양을 싫어했다.

새벽에 일어나 쌀을 씻고, 누군가의 배고픔에 하루의 리듬을 맞추는 일.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삼켜버리는지,

그녀는 어릴 때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너는 식품영양 쪽으로 가면 잘할 것 같아.”

"시집도 잘 갈수 있을꺼야"
그 말은 합리적이었다.

집에서는 늘 음식 이야기가 오갔고, 그녀는 조리 과정도, 재료의 성질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식품영양학과에 갔다.

한식 조리 자격증을 땄고, 제빵 자격증도 땄다. 브런치 과정까지 수료했다.

이력서에 적을 줄은 많아졌지만, 이상하게도 부엌에 서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었다.
“그 정도면 요리 좋아하겠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할 줄 몰라요.”


그 말 뒤에 숨은 진짜 마음은 말하지 않았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주말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지방에 있었고, 그녀는 집에 남았다.

평일의 집은 조용했다.

밥솥은 거의 열리지 않았고, 냉장고에는 샐러드, 컵라면, 편의점 도시락이 차례로 들어왔다 나갔다.

그녀는 혼자 먹는 밥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신 그녀는 검색했다.


맛집, 신상 브런치, 오픈해서 세일하는 레스토랑.


그건 요리가 아니라 계획이었고, 노동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평일에는 대충 때우고, 주말에는 잘 먹는 삶.

그녀는 그 균형이 마음에 들었다.

밥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밥을 고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편이 올라오는 주말이 다가오면 그녀는 말했다.


“우리, 이번엔 밖에서 먹자.”
그 말에는 자연스러운 유도가 섞여 있었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편도 처음에는 집밥 집밥 외쳤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지 크게 불만은 없었다.

밖에서 둘이 사먹는게 더 싸

그는 “밖에서 먹는 게 낫지”라고 말했고, 그녀는 안도했다.

누군가의 끼니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생각보다 편했다.


가끔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
그 질문에 그녀는 늘 짧게 답했다. “응, 먹어.”


어떻게 먹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새벽마다 밥을 하는 동안, 자신은 전자레인지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엄마의 삶은 그녀에게 경고처럼 남아 있었다.


희생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반복.

밥상 위에서 지워진 이름.

그녀는 그 길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철부지 아내라는 말을 들어도 괜찮았다.

적어도 자기 인생의 시간은 자기가 쓰고 싶었다.


어느 날, 혼자 먹는 저녁에 문득 생각했다.


엄마는 밥을 하며 무엇을 꿈꿨을까.


그리고 자신은 밥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잃고 있을까.


그 질문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맛집을 검색했다.

이번 주말에 갈 곳을 정했다.

예약 버튼을 누르며 생각했다.

이게 나의 방식이라고.

밥으로 누군가를 붙잡지 않고, 밥 때문에 자신을 놓치지 않는 삶.

그녀는 여전히 요리를 할 줄 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 선택은 의식적이었고, 단단했다.

새벽에 밥을 하지 않는 대신, 그녀는 늦잠을 잔다.

누군가의 끼니를 책임지지 않는 대신, 자신의 하루를 책임진다.


엄마와 딸은 닮지 않았다.
같은 부엌에서 자랐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 사람은 밥으로 가족을 붙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밥에서 멀어짐으로써 자신을 지켰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집안에서 밥은 늘 인생을 가르는 선택이었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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