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도시락 6개 있는 집
질량보존의 법칙을 그녀는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없다.
다만 삶으로 먼저 알았다.
어떤 수고도, 어떤 시간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남는다는 것을.
남편을 따라 해외 주재원에 나갔을 때, 그녀는 여행의 꿈만 키웠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곳의 음식은 몸에 맞지 않았고, 아이들은 셋이었다. 국제학교에 다녔고, 도시락이 필요했다.
매일 아침, 그녀는 공장처럼 움직였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 보온 도시락 세 개와 스낵박스 세 개가 일렬로 놓였다.
밥은 뜨거워야 했고, 반찬은 식어도 괜찮아야 했다.
그 기준을 맞추는 일은 전투에 가까웠다.
한국 마트는 차로 사십 분.
두부 하나, 콩나물 한 봉지를 사기 위해 고속도로를 탔다.
물건은 바다를 건너왔고, 가격은 몇 배였다.
배추 한 포기 앞에서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망설였다.
오늘은 김치를 담글 수 있을까, 아니면 이걸로 사흘을 버텨야 할까.
선택은 늘 아이들의 도시락으로 기울었다.
도시는 점점 커졌다.
처음엔 통학이 사십 분이었는데, 어느새 한 시간이 넘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도로는 예측 불가가 되었고, 학교 시작은 여덟 시였지만
집을 나서는 시간은 일곱 시로 당겨졌다.
그러다 어느 날, 스쿨버스 시간이 6시 40분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하루는 그때부터 더 앞당겨졌다.
새벽은 더 이상 밤의 끝이 아니라, 하루의 시작이었다.
4년 동안 그녀는 도시락을 쌌다.
보온통 세 개, 스낵박스 세 개.
그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그녀의 마음이었다.
한국에 가면, 절대 밥 안 해야지.
그 생각이 점점 단단해졌다.
다짐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어느 날, 한국에서 엄마가 김치를 택배로 보내왔다.
타운에 소문이 났다.
윗사모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 김치가 먹고 싶어요.”
김치는 배송이 오래 걸린 탓에 시어 있었다.
사모님은 바로 한 김치를 원하셨다.
그녀는 고민 끝에 배추를 샀다.
물이 다르고, 배추가 달랐다.
그래도 만들었다.
한국의 맛을 떠올리며,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사모님도 김치를 담그고 계셨다.
같은 이유였다. 한국의 김치가 그리워서.
그녀는 판단했다. 이 김치는 드릴 수 없다고. 너무 시다고.
그러고는 부랴부랴 새 김치를 또 만들었다.
그날의 부엌은 열과 냄새와 초조로 가득했다.
그녀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김치는 결국 누구의 입에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수고는 남았고, 결과는 사라졌다.
그곳엔 한국 식당이 하나뿐이었다.
비쌌다.
큰일 있을 때만 가는 외식.
그래서 모든 끼니는 집이었다.
밥은 늘 집에서 지어졌고, 그녀의 에너지는 늘 밥으로 흘러갔다.
네 해 동안, 그녀의 삶은 밥의 형태로 저장되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도시락과 이별이라 좋았다
학교 급식이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쿠팡으로 주문하면 다음 날 재료가 왔다.
두부와 콩나물이 집 앞에 도착했다.
해외 살다 오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편리함 앞에서 그녀는 자주 멈춰 섰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밥을 할 이유가 사라졌다.
아이들은 컸다.
살을 뺀다며 닭가슴살과 채소를 먹었다.
스스로 계란을 삶고, 고구마를 굽고, 단백질 파우더를 흔들었다.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는 줄었다.
“엄마, 뭐 먹어?” 대신 “나 알아서 먹을게”가 늘었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해외에서 밥에 쏟아부은 에너지가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질량은 보존되었다.
다만 형태가 바뀌었을 뿐. 그 에너지는 이제 휴식이 되었고, 늦잠이 되었고, 부엌에 서지 않는 선택이 되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요즘은 밥 안 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거의 안 해.”
그 말에는 후회도, 자랑도 없다.
그저 사실이다.
한때 그녀의 삶을 가득 채웠던 밥은, 이제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아이들의 자립으로, 편리한 시스템으로, 그리고 그녀 자신의 시간으로.
그녀는 가끔 김치 냄새를 떠올린다.
시어버린 김치와, 다시 담근 김치와, 결국 남은 수고.
그리고 웃는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질량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밥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밥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