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그랜드캐년!"
또 시작이다. 이 거창한 타이틀들은 대체 누가 붙이는 걸까.
팸플릿에는 '붉은 물감이 스며든 듯한 신비로운 협곡'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번엔 진짜겠지?'
...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요정은 없고, 똥물은 있고
도착해서 본 것은 그랜드캐년이 아니었다.
그냥... 시골 개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똥물 있을 것 같은 또랑 수준'.
"신발 벗고 들어가세요. 15분 걸으면 협곡 나와요."
가이드가 태연하게 말했다.
'잠깐, 맨발로?'
이럴 거면 아쿠아 슈즈 챙겨 오라고 미리 말해주지.
입구에 신발을 벗어놓고, 나는 엄마와 함께 조심조심 진흙탕 개울에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의 감촉.
발바닥에 느껴지는 미끌미끌한 모래.
'아, 이거 넘어지면 큰일 나겠는데.'
요정 대신 뱀이 반겨주는 곳
한 걸음 한 걸음 신경 쓰며 걷는데, 중간중간 상인들이 보였다.
어떤 팀은 커다란 뱀을 들고 나와 "사진 찍어요! 사진!"을 외치며 호객 행위 중이었다.
'요정은 안 보이고 뱀만 보이네.'
옆에는 음료수 파는 가게도 있었다.
이 더위에 장사는 되겠다 싶었다.
시골 물가 산책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었다.
엄마는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해하셨고, 나도 발밑만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팸플릿 vs 현실의 갭
팸플릿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부드러운 붉은 모래와 발목까지 닿는 얕은 물이 어우러져 놀라울 정도로 상쾌합니다.
모래사장의 천연 풋 스파는 무이네의 더위를 피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현실:
진흙물에 발 담그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전전긍긍.
상쾌한 건 없고 피곤만 쌓여간다.
"붉은 흙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면 언덕과 바다의 웅장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현실:
그냥... 붉은 개울이었다.
웅장함? 글쎄.
'또 속았다.'
내가 보기엔 그냥 진흙물인데, 이게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니.
부모님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신경 쓰느라 더 피곤해하셨다.
전설은 아름답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요정의 샘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옛날 하늘의 요정이 인간 세상의 어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바다의 왕이 허락하지 않아 요정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야 했다.
떠나기 전, 요정은 산에서 바다로 흐르는 작은 샘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행운과 풍요를 주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현장에서 내가 느낀 건 '요정'보다는 '미끄러짐 주의'.
붉은 사구와 기암절벽 사이를 흐르는 신비로운 풍경이 요정의 세계 같다고?
글쎄... 나한테는 그냥 시골 개울이었는데.
그래도 사진은 예쁘게 나왔다
집에 와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의외로 잘 나왔다.
붉은 모래 협곡 배경에, 맨발로 물을 걷는 모습.
필터 하나 씌우니 꽤 감성적이었다.
'오, 이 정도면... 그래, 나쁘지 않네?'
사진으로 보니 진짜 동양의 '리틀' 그랜드캐년 같기도 하고.
현장에서는 실망했지만, 사진 속 나는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결론: 기대는 낮게, 사진은 예쁘게
요정의 샘에서 배운 교훈.
거창한 별명은 믿지 말 것
아쿠아 슈즈는 필수
현장에서는 실망해도 사진은 예쁘게 나온다
그래, 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나.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즐기는 것.
그리고 나중에 사진 보며 '그래도 재미있었지' 하고 위안 삼는 것.
요정은 못 봤지만, 추억은 남았다.
진흙탕 추억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