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건진 하루

과천


솔직히 말하면, 이번 설 연휴는 거의 다 날렸다.

원래 계획은 뉴욕 현대미술관이었다.

현실은

꿩대신 닭으로

무료 전시를 열심히 찾아 스크랩까지 해뒀는데, 그 꿈은 조용히 접어야 했다.

연휴 첫날은 남편이 가고 싶다는 종묘로 갔다.

나머지 날들은 아무 계획도 없이 흘러가 버릴 것 같아 아침에 슬쩍 꺼냈다.

"과천 미술관이라도 가자."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여동생네랑 밥 먹기로 했다고.

순간 무너지려는 마음을 잡고 협상을 시도했다. "밥 먹고 가면 되잖아." 의외로 합의가 됐다.

그렇게 남편과 둘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으로 드디어 출발.

과천 미술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주차 전쟁이다.

길게 늘어선 차 행렬, 입구도 못 찾고 뱅뱅 도는 그 기억.

그런데 오늘은 줄이 없었다. 너무 없어서 오히려 불안했다.

혹시 오늘 문 닫은 거 아냐?

다행히 열려 있었다.

그리고 매표소 앞에서 어제 발급받은 예술인 패스를 꺼냈다.

"입장 무료입니다."

정가 3천 원. 고작 3천 원 할인인데, 그 순간 기분이 이상하게 좋았다.

돈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이제 예술인이구나 싶은, 뭔가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3천 원짜리 자존감이지만 꽤 단단했다.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 2였다.

작년 추석 연휴에 왔을 때 봤던 작품들도 몇 점 보였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웠다. 그래서 도슨트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1시부터 5시까지, 4타임을 전부 들었다.

도슨트마다 느낌이 달랐다. 같은 작품인데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처럼 보였다.

어떤 도슨트는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어떤 도슨트는 작가의 내면을 중심으로. 같은 작품을 여러 도슨트에게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나는 늘 맨 앞에 서서 설명을 들었다. 나처럼 앞자리를 고수하는 여성도 있었고,

여자 가방을 들고 손을 꼭 잡은 중년 커플도 있었다.

그 모습이 괜히 눈에 들어왔다.

우리 부부는? 나는 맨 앞, 남편은 맨 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남남보다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카풀만 했을 뿐, 미술관 안에서는 각자였다.


아는 지인이 우리 부부를 두고 "북토 크도 같이 가고 미술관도 같이 다니고 정말 부럽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보면 그냥 차만 같이 탄 거다.

겉에서 보면 금실 좋은 부부, 안에서 보면 취향 공유 없는 동행.

뭐, 그것도 나름 우리 방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시 중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도자기 작가 이야기.

아버지가 의사여서 자식에게 가마를 사줬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한 생각이 올라왔다.

역시 예술은 부자만 할 수 있는 시대

도자기로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기술, 아프리카 골동품을 수집할 수 있는 재력.

그분은 시대도, 부모님도, 타이밍도 다 좋으셨던 거다.

부럽다는 말이 나오려다 그냥 삼켰다.

청각장애를 가진 남편과 부유한 집안 아내의 부부 화가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남편이 뒤에서 묵묵히 받쳐줘서 아내가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복잡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누군가의 헌신 위에 피어난 예술.

그게 아름다운 건지, 아니면 그냥 현실인 건지.

샤갈도 보였고, 수련도 보였다.

마음이 울적한 날에는 미술관에 가보길 추천한다.

설명 없이 그냥 멍하니 보고 있어도, 그림이 알아서 뭔가를 건네준다.

미술관 투어는 체력 싸움이다.

몇 시간을 걷고 서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도슨트를 따라다니면 시간이 이상하게 빨리 간다.

어느새 5시, 4타임을 다 듣고 나서야 발이 아프다는 걸 느꼈다.

주차비는 입장료보다 비싸게 나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뉴욕 미술관은 못 갔지만, 과천에서 충분히 힐링했다.

예술인 패스 하나로 시작된 하루가, 생각보다 꽤 괜찮은 설 연휴로 마무리됐다.

무의미하게 지나갔다고 했는데, 사실 제일 잘 쓴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돌려서 보라고

도슨트가 설명해주었다

미술관 가기전 나의 자화상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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