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넣을 곳이 없어졌을 때,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거창하게 결심한 건 아니었다.
그냥 더 이상 거절당할 곳이 없어졌을 때, 남은 선택지가 '쓰는 것'밖에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작가라는 말이 내게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울리든 아니든 글감은 찾아야 했다.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무료 전시를 찾았다.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다 이끼를 주제로 한 전시가 눈에 들어왔다. 커피도 주고 화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무료에 커피 까지라니, 바로 실행에 옮겼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서울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서초로 들어갔다. 두 시간이 걸렸다. 버스 창밖으로 도시가 흘러갔고 나는 그 안에서 잠깐, 그냥 어딘가로 가는 사람이 되었다. 주부도 아니고 구직자도 아닌, 그냥 버스를 탄 사람.
갤러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금방 보였다. 4시 프로그램 접수를 해뒀는데 3시에 도착했다. 여유가 생기자 오히려 제대로 보게 되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고, 무료 커피를 마셨고, 손으로 직접 화분을 꾸몄고, 이벤트 QR 코드에도 참여했다.
40분이었다.
두 시간 걸려 온 것치고는 짧다면 짧지만, 이벤트에 당첨되어 커피 박스를 손에 들고 나오는 길은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전시 제목은 '이끼 : 공존의 시대'였다.
작가 양종용은 15년 동안 이끼를 그려왔다고 했다. 높게 자라지 않고, 넓게 퍼져가는 작은 풀. 공간에 존재하는 것들을 보듬고, 그 존재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생명. 레진으로 굳힌 콘크리트 위에 이끼를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이끼는 뿌리가 없다. 그러나 어디에든 붙어 산다.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하지 않아도,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도 제 빛깔을 잃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무엇으로 내 인생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경력의 공백은 길어졌고, 내가 해온 것들은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밥을 짓고, 빨래를 개고, 아이의 등을 쓸어주고, 남편의 말을 들어주고. 이런 것들은 어떤 칸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끼도 그렇지 않던가.
화려하게 피어나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록에 남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공간을 채우고 관계를 잇는 것. 작가는 그런 이끼에서 삶의 가치를 보았다고 했다.
어쩌면 나의 대표작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매일 완성되고 있는 중인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숫자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방식으로.
두 시간 걸려 와서 40분 보고 두 시간 걸려 돌아갔다. 남는 건 이끼 한 뭉치 얹힌 내가 꾸민 작은 화분사진과, 이 글 한 편.
그걸로 충분하다고, 오늘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