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빵

당신의 주식은?

빵 한 조각



쥐가 먹다 남긴 빵을 집어 들었다는 말을,
아버지는 웃으면서 하셨다.

나는 웃지 못했다.



쉰둘의 나는 요즘 밥을 굶는다.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의사가 권장 체중을 말해줬고, 나는 앱을 깔았다.
칼로리를 계산하고, 저녁을 건너뛰고,
배가 고프면 물을 마신다.

참을 만하다.
하루만 지나면 몸이 익숙해진다.
배고픔은 생각보다 조용해진다.

그걸 나는 의지력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독일로 떠나신 건 내가 세 살 때였다.

사진 속 아버지는 낯설었다.
헬멧을 쓰고, 작업복을 입고,
카메라를 향해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남자.

나는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볼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늘 사진 속에만 있었으니까.



명절이면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며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보내준 돈으로 산 쌀이라고.

나는 밥을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밥은 그냥 밥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냥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나는 7살이었다.

광부로 벌어오신 돈으로 집을 샀다

낯선 남자가 현관에 서 있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아드리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고,
반갑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오래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그날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우리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아버지가 여든이 한참 넘어선 되던 해 겨울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우신 아버지 곁에서
나는 귤을 까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버지가 천장을 보며 말씀하셨다.

"거기서는 밥이 없었어. 빵이었는데."

나는 귤을 까다 말았다.

"광산이 얼마나 깊은지 아나. 내려가면 귀가 먹먹해. 소리가 달라져. 내 목소리도 낯설어지고."

"밥때가 되면 빵을 꺼내 먹었는데, 쥐가 왔어. 쫓기도 하다가. 나중엔 그냥 뒀어. 어차피 나눠 먹게 되니까."

아버지는 또 웃으셨다.
그 웃음이 나는 무서웠다.

무서운 게 아니라.



슬펐다.

처음으로.



나는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지하 천 미터.
소리가 달라지는 곳.
헬멧 속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얼굴.
깜깜한 데서 꺼낸 빵.
옆에 쭈그리고 앉은 쥐.

아버지는 혼자 거기 있었다.

딸이 세 살이었을 때,
딸이 네 살이었을 때,
딸이 다섯 살이었을 때.

그 시간 내내.

나는 밥을 먹고 자랐고,
아버지는 쥐와 빵을 나눠 먹었다.



다음날 나는 아무것도 굶지 않았다.

앱을 켜지 않았다.
칼로리를 세지 않았다.

아침을 먹었다.

밥을 한 숟갈 뜨는데
목이 메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밥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없었는데.

밥 한 숟갈 안에
누군가의 지하 천 미터가 들어 있다는 걸
쉰둘이 되어서야 알았다.



아버지와 나는 여전히 말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버지가 말을 아끼셨던 건
하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였다는 걸.

지하에서 홀로 삼킨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평생 모르셨다는 걸.



나는 오늘도 밥을 먹는다.

천천히.

다 먹는다.

아버지 몫까지.



밥은 그냥 밥이 아니었다.
누군가 굶어가며 벌어다 준 것이었다.
누군가 쥐와 나눠 먹으면서도


딸에게는 흰쌀밥을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나는 쉰둘이 되어서야
밥 한 그릇의 무게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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