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잔치를 마치며 — 큰딸의 자리



3개월 전부터 장소를 알아봤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날짜를 잡고 나서야 알았다.

3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그날 호텔 식당이 이미 반쯤 차 있을 거라는 것도.

"1년 전에는 미리 예약했어야 했나."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사실 70 잔치 때 좋은 기억이 있는 같은 호텔로 다시 잡았다는 것에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내심 뿌듯했다.

장소가 익숙하면 마음이 덜 긴장된다.

손님들도 그 호텔을 기억하고 계셨으니까.



점심 시간대는 이미 없었다. 저녁 여섯 시로 잡았다.

대부분이 연세 드신 친척분들이라 운전이 어려우셨다. 자녀들이 모셔다 드려야 하는데, 홀이 70석이라 어른들만 초대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분들은 한 분도 부르지 못하고, 친척만 모셨는데도 자리가 빠듯했다. 자식이 운전만 해드리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사전에 양해를 구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오고 싶으신 분들을 우리가 못 모신 것이니까.

옆 홀에서는 90 순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홀보다 작았다. 나는 괜히 그쪽을 흘끗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더 크구나.

뭔가 경쟁도 아닌데 조금 안도했다. 그런 시시한 마음도 드는 게 잔칫날이다.


역할 분담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장소 섭외부터 답례품, 꽃 준비는 남동생이 맡았다. 동영상 제작은 우리 집 딸.

그리고 나는 케이크픽업을 맡았다.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왕복 한 시간 거리였다. 개인이 운영하는 쌀케이크 가게였다. 2단 케이크에 꽃 장식, 숫자 초 '8'과 '0'. 촛불 두 개에 2천 원 추가 결제.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잠깐 실망했다. 괜히 특별한 초인 줄 알았는데, 다이소에 가면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왕복 한 시간을 달려 찾아온 것치고는 허망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쁜 걸 찾으려고 나름 고생했겠지.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호텔로 출발했다. 잔칫날에는 마음이 자꾸 작은 데서 큰 데로 이동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일찍 도착하신 손님들이 계셨다. 식순을 정리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나는 문득 옛날 시골 잔치가 떠올랐다. 80이면 기생을 부르고, 악단이 오고, 마당에서 춤을 추던 그 시절. 지금은 그런 잔치가 사라졌지만, 그때의 들뜸과 북적임은 어딘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영상은 풍성했다. 가족여행에서 찍어 둔 사진과 영상이 많았던 덕분이다. 별도의 이벤트 없이, 진짜 가족끼리 밥 먹는 것으로 자리가 마무리됐다. 어쩌면 그게 제일 잔치다운 잔치인지도 모른다.



결제는 남편의 카드로 내가 결제했다.

영수증을 받아 들고 나는 잠시 멍했다. 소주 한 병에 11,000원. 역시 호텔이구나. 장소 대여비는 몇십만 원. 1인당 식사비는 10만 원이 넘었다. 예전엔 예약할 때 시식 초대권도 줬다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각각에게서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고 했다. 고맙다고.

그 말을 전해 들으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말로 하면 우습고, 안 하면 섭섭한 그 자리. 티 나지 않게 큰돈 쓰고, 티 나지 않게 움직이고, 그래도 어딘가에서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큰딸이 받는 조용한 보상이다.

3개월의 준비가, 왕복 한 시간의 케이크 픽업이, 70석 자리의 조율이 — 그날 저녁 여섯 시에 모두 녹아 없어졌다.

아버지의 80번째 생일이 무사히 지나갔다.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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