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실장
문자가 온 건 오전 아홉 시였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하나 나오는 방이 저녁때 퇴실이어서 3월 1일 오후에 방이 5개가 될 것 같은데 … 그렇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현주는 메시지를 두 번 읽었다.
실장님.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강사도 해봤고, 전단지도 돌려봤고, 설문조사 알바도 했지만 실장이라는 호칭은 처음이었다.
어딘가 간지럽고 어딘가 으쓱했다.
네.
한 글자를 보내고 현주는 달력을 봤다.
삼월 일일. 삼일절. 온 가족이 쉬는 날에 고시원 방 다섯 개를 청소하러 가는 사람.
그게 나는구나.
현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신랑을 흔들어 깨웠다.
"같이 가자."
신랑이 눈을 비볐다. "어디를?"
"고시원."
오후 두 시, 원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523호 1212 / 530호 3096 / 531호 / 506호 0209 / 512호 415417 / 517호 1234
숫자들이 쭉 나열됐다.
방 번호와 비밀번호.
현주는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적으면서 생각했다.
이 숫자들 뒤에 사람이 살았겠지.
각자의 사정으로 들어왔다가 각자의 사정으로 떠났겠지.
말씀드린 것보다 방이 하나 더 있었네요.
원장의 문자 말미에 붙은 말이었다.
미안함이 배어있었다.
현주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네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 냄새가 먼저 왔다.
밀폐된 공간 특유의 냄새.
누군가의 체취와 음식 냄새와 습기가 한데 섞인 것.
현주는 잠깐 숨을 참았다가 그냥 내쉬었다.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신랑이 뒤에서 말했다.
"냄새나는데."
"알아."
"심각하게."
"알아."
현주는 506호 앞에 멈춰 섰다.
비밀번호를 눌렀다.
0209. 문이 열렸다.
냄새가 확 밀려왔다.
506호 화장실 하수구에서는 심상치 않은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현주는 소다를 꺼냈다. 뿌렸다. 기다렸다. 물을 내렸다.
다시 뿌렸다. 또 기다렸다. 또 내렸다.
세 번째 작업을 하면서 현주는 생각했다.
이게 내 일이구나.
남이 살다 간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하수구 냄새와 씨름하는 것.
506 하수구 냄새나서 3번 작업. 락스 뿌려놨어요.
원장에게 보냈다. 답장이 왔다.
넵~
물결표 하나.
현주는 그 물결표를 보며 짧게 웃었다.
이 무거운 하수구 냄새와 저 경쾌한 물결표 사이의 거리.
그게 원장과 자신의 거리이기도 했다.
원장은 전화기 저편에서 결과를 받고, 현주는 이편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뭔가를 해결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냄새가 올라오던 하수구가 소다 세 번으로 잠잠해질 때, 그 소소한 승리감.
신랑이 옆 방에서 소리쳤다.
"530호 화장실 불량인데, 나 사진 찍어서 보낼게."
"응, 원장님한테 바로 보내."
"나도 이제 실장이야?"
"당신은 조수야."
517호 매트리스 커버는 문제가 있었다.
방수 커버 안쪽에 잔털이 박혀 있었다.
세탁기를 돌려도 나오지 않는 종류의 털.
현주는 결국 족집게를 꺼냈다.
하나씩 잡아당겼다. 열 번.
방수커버에 잔털이 숨어 들어가 잘 안 빠져요.
족집게로 뽑아야 해요.
손으로 잡아 빼는 거 10개 함.
원장님께 카톡을 보내고 나서 현주는 잠깐 멈췄다.
이 문장을 보내는 사람이 나라는 게 가끔 신기했다.
족집게로 남이 쓰던 매트리스 커버에서 털을 뽑는 사람.
그러면서 그걸 카톡으로 보고하는 사람.
원장 답장이 왔다.
네~ 감사드려요^^
세탁기 성능 문제일까요…
현주는 피식 웃었다.
세탁기 문제가 아니에요, 원장님. 털 문제예요. 사람 털.
오후 다섯 시가 지났다.
방 여섯 개와 주방이 끝났다.
나뭇잎도 치웠다.
쓰레기봉투도 묶었다.
현주는 사무실 안에 봉투를 넣고 마지막으로 복도를 한 번 훑었다.
원장에게서 입금 알림이 왔다.
송금 완료요~
현주는 잔액을 확인했다.
오늘 일한 값.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녁 고기 먹으러 가자."
신랑이 엄지를 들었다.
원장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면서 현주는 덧붙였다.
남자 냄새나는 방이 있었는데^^ 페브리즈 많이 뿌렸어요.
잠깐 뜸을 들이다 원장이 답했다.
넵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마디가 더 왔다.
춥진 않았나요?
현주는 그 질문에서 잠깐 멈췄다.
방이 따뜻했냐는 게 아니었다.
현주가 추웠냐는 거였다. 일하면서.
춥진 않았어요.
보내고 나서 신랑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혔다.
둘이서 잠깐 침묵했다.
"힘들었어?" 신랑이 물었다.
"아니." 현주가 말했다. "재밌었어. 좀."
2년이 지났다.
현주는 이제 사무실 비밀번호를 외웠다.
과탄산수소나트륨을 쓰는 법을 알았다.
결로가 뭔지, 하수구 냄새가 왜 올라오는지, 락스를 화장실에 쓸 때 환기가 왜 중요한지.
고시원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숨 쉬고 어떻게 병드는지.
원장님도 알게 됐다.
팔을 다쳐서 직접 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올해는 수술도 하셨다.
그래도 물결표와 쌍느낌표와 감사합니다를 빼지 않았다.
미안할 것 같은 부탁을 드릴 때마다 ^^;; 를 붙였다.
현주는 그 반쪽짜리 웃음 이모티콘이 좋았다.
어느 날 원장이 물었다.
방들은 온도가 적당하던가요?^^;;
현주가 답했다.
창문 열고 환기부터 해서 정확히 온도는 ^^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한 줄을 더 보냈다.
원장님께서 워낙 잘해주셔서 고시원 알바 한 지도 오래됐는데 제일 같고요.
좋은 분과 함께여서 일이 즐거워요~~~
물결표를 세 개 찍었다. 처음으로.
밤 열 시 사십 분.
현주는 세탁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세탁기 옆 호수줄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고 외출 다녀온 뒤였고 피곤했다.
원장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호수줄이 파손되어 있네요.
원장이 답했다.
실장님 밤늦게 고생 많으셨습니다.
현주는 일어섰다.
무릎이 삐걱거렸다.
복도 불빛이 노랬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현주는 잠깐 서 있었다.
남이 사는 공간을 청소한다는 것.
누군가 살다 간 자리를 닦아내고, 다음 사람이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것.
이게 거창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일이었다.
하수구 뚫고 치우고 락스 뿌리는 일.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도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현주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다음 주에 또 방이 난다고 했다. 두 개. 어쩌면 세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