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나는 두 가지 얼굴로 두 번 그 학교에 갔다.
낮에는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으로 — 커다란 가방을 메고 교문 앞에 서서 "안녕하세요" 열 번쯤 외치다가 "됐어요" 소리를 들으며 어깨가 작아지는 그 사람.
오늘 저녁에는 학부모로 — 굽 있는 신발을 꺼내 신고, 심지어 마스카라까지 하고 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하는 그 사람.
같은 문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오늘은 2026년도 학부모 총회 날이었다.
딸이 졸업한 학교라 코스를 이미 꿰고 있고, 새로울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들이 학급대표라 마음 한구석이 자꾸 신경 쓰였다.
내 아들의 담임은 어떤 분일까.
과학 담당이라고 해서 당연히 남자 선생님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교실에 들어서니 여자 선생님이었다.
첫 번째 오판.
강당 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학급으로 올라갔다.
교실 문을 열었더니 의자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선생님도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
사전에 신청한 학부모는 딱 다섯 명.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의자를 내려앉았다.
어, 이거 좀 다른 분위기인데. 작년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처음 부임받은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프린트물까지 손수 준비해서 학부모 앞에 서던 그 긴장한 눈빛.
초보 담임의 애씀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올해 담임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랬다.
"아직 애들을 잘 모르겠어요. 학교 온 지 얼마 안 됐고, 워낙 얌전해서 성적도 파악이 안 됐고..."
오, 솔직하시다.
그사이 반 학부모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문제가 터졌다.
지원자가 없으니 반장 엄마인 내에게 눈치 빠르게 보내셔서 손을 들어 회의실로 내려갔다.
1학년 대표까지 맡고 부랴부랴 다시 교실로 올라왔더니.
우리 반만 불이 꺼져 있었다.
복도에서 다른 반을 슬쩍 들여다봤다.
불 환하게 켜지고, 선생님 목소리 들리고, 학부모들 고개 끄덕이고. 우리 반은 이미 끝난 것이다.
허탈하다기보다는 묘하게 웃겼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굽 있는 신발까지 신고 왔는데. 마스카라도 했는데.
아들이 학급 대표인데.
담임 선생님은 "애들이 너무 착해서 할 말이 없다"라고 하셨다.
... 믿어야지, 뭐.
그 말을 붙잡고 집에 왔다.
착한 아이들이 있는 조용한 반.
준비 없이도 별일 없이 돌아가는 교실.
어쩌면 그게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계단을 내려오는 굽 있는 신발 소리에 섞어 생각했다.
내년엔 운동화 신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