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예술 전시를 다녀와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어딘가 낯선 감각이 먼저 왔다.
그림인데, 글자였다.
글자인데, 그림이었다.
왼쪽 벽에는 먹으로 그린 듯한 수묵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나이 든 남자가 나무에 걸터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승호 작가의 〈세월아 돌려다오〉였다. 전통 산수화 특유의 고즈넉함이 물씬 풍겨서, 처음엔 그냥 수묵화려니 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갔다가, 나는 그만 멈춰버렸다.
산이 글자였다.
나무가 글자였다.
노인의 주름진 얼굴도, 그가 걸터앉은 나뭇가지도 전부 깨알 같은 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형상이었다.
'둥', '슈우', '우수수수'—바람 소리, 낙엽 지는 소리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소리가 모여 풍경이 된 것이다.
보이는 그림이 동시에 들리는 그림이기도 했다.
나는 한참을 서서 글자를 눈으로 더듬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자들 사이에서 반가운 단어가 보일 때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아이처럼 작은 기쁨이 일었다.
어느새 나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있었다.
아니, 읽으면서 듣고 있었다.
가운데 벽의 작품은 또 달랐다.
무수한 동그란 점들—아니, 가까이 보니 알파벳이었다
글자가 모여 얼굴들을 이루고 있었다.
ABBA, 그 낯익은 팝 그룹의 얼굴들.
문자라는 것이 본래 소리를 담는 그릇 아닌가.
그 소리의 그릇들이 모여 이번엔 시각적 형상이 되어 있었다.
듣는 것이 보이는 것이 되고, 보이는 것이 다시 듣는 것으로 돌아오는 순환.
전시장 안에서 내 감각들이 조용히 뒤섞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문자 하나하나가 사실은 소리이고, 리듬이고, 기억이다.
작가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글자로 산을 쌓고, 글자로 사람 얼굴을 빚었을 것이다.
세월아 돌려다오—.
그 제목이 뒤늦게 가슴에 와닿았다.
노인이 되돌려달라는 것이 꼭 젊음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바람 소리, 낙엽 소리, 누군가와 나누던 말 한마디—소리로 가득 찼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글자로 그린 그림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