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봉투 모양의 전단지.
복용법: 진로가 고민인 학생 님께. 1일 1회 일분.
약봉투였다.
전단지가 약봉투 안에 쏙 들어 있었다.
고등학교 앞에서 물티슈를 나눠줬던 그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초등학교도 해줄 수 있냐고. 30분에 15,000원.
지난번보다 시급이 반 토막 났지만 시간도 반이니 손해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 나눠주기가 얼마나 편한가.
물티슈처럼 묵직하게 들고 있을 필요도 없다.
봉투 하나씩 건네면 그만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큰 박스를 자전거 뒤에 꽁꽁 묶었다.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학교 앞까지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한 손으로 박스를 붙들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천천히 밀었다.
학원 강사도 아니고 학부모도 아닌, 자전거를 끌고 초등학교 정문 앞에 나타난 오십 대 여자.
정문 앞에 자리를 잡으려는데 교문 앞 안전지도 시니어 분이 손을 저었다.
"오늘 교장 선생님 오세요. 후문으로 가세요."
정문이 아이들이 더 많이 다닐 것 같아서 옆으로 조금 이동했다.
그러자 이번엔 안전보행사 분이 뭐라 하셨다.
결국 후문으로 옮겼다.
자리를 잡고 봉투를 꺼내려는데, 이번엔 학교 선생님이 직접 나오셨다.
"등교 시간 말고요, 하교 길에 나눠주세요."
이유가 있었다.
학교에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받아서 교실 안에 가지고 들어오거나 교문 앞에 버린다는 것이었다.
하교 길에 나눠주면 집에 가서 버릴 테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집에 가서 버리게."
그러니까, 나는 지금 쓰레기를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입장에서 나는, 쓰레기를 배달하는 사람이었다.
자존감이 팍
나는 봉투를 내밀었다.
나의 미래 처방전.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받아 갔다.
약봉투처럼 생겼으니까. 뭔가 신기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또 나오셨다.
"얘들아, 받지 마."
아이들이 멈칫했다.
받은 아이들은 다시 돌려놓으려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서 봉투를 받아 내 박스에 던지셨다.
하나, 둘, 탁탁. 나는 박스를 들고 서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오후에 나눠주세요" 소리에 이미 돌아갔을 것이다.
나도 안다.
그게 보통의 선택이라는 것을.
그런데 나는 맡은 일이 있었다.
30분짜리 알바.
내가 받아온 박스.
나는 끝까지 봉투를 내밀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높아지셨다.
"경찰 부를 거예요."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부르세요. 저는 30분짜리 하루 아르바이트생입니다. 원장님한테 연락해 보세요."
원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학부모님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아이들은 오히려 더 받고 싶어서 주위를 맴돌았다.
한 편의 짧은 영화 같았다.
긴장감이 넘쳤고, 나는 주인공인지 엑스트라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학부모님들께만 봉투를 드렸다.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없으니, 학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런데 학부모님은 드문드문 오셨다.
30분이 훌쩍 넘었다.
박스 안의 봉투는 줄지 않았다.
빈 박스를 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가고 싶었는데 오늘은 남은 전단지를 다시 학원에 올려놓고 돌아와야 한다
자전거 뒤에는 아까보다 조금 가벼워진 박스가 묶여 있었다. 조금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학교를 지키려 했고, 나는 맡은 일을 하려 했고, 아이들은 그냥 신기해했고, 원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각자 자기 역할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처방전이라고 적힌 봉투를 나눠주다가 상처를 받았다.
생존을 위한 일이었다면 아마 울었을 것이다.
나는 다행히 알바 일지 2편을 완성하기 위해 삶을 체험하는 중이었다.
그 강한 의지와 정신력이 나를 끝까지 후문 앞에 세워 두었다.
나의 미래 처방전 — 복용법: 이런 날도 글이 된다.
내일 다른 초등학교도 하나 남았는데
과연 내일 알바를 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