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생의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이었다.
자전거 뒤에 박스를 묶는 손이 달랐다.
첫날의 나는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박스를 붙들고 자전거를 끌었다.
오늘의 나는 꽁꽁 묶고 올라탔다.
그냥 페달을 밟았다.
숙련의 맛이란 이런 것이다.
자격증도 없고 경력증명서도 없지만, 나는 분명히 성장해 있었다.
신호등 건너편에서 나눠주려고 자리를 잡는 순간, 실버 안전 교통 할아버지가 손을 드셨다.
"교문 쪽으로 가세요."
어제의 트라우마가 등줄기를 스쳤다.
경찰 부른다던 선생님, 내 박스에 도로 던져지던 봉투들.
나는 최대한 교문에서 멀리 서고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손은 교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교문에서 혼났는데요.'
말은 삼키고 교문 옆에 딱 붙어 섰다.
이미 와버렸으니, 해보는 수밖에.
첫 번째 아이가 다가왔다.
"이게 뭐예요?"
약봉투였다.
나의 미래 처방전.
아이는 봉투를 뒤집어 보고, 흔들어 보고, 그래도 뭔지 몰라서 일단 받아 갔다.
두 번째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왔다.
세 번째 아이는 두 번째 아이를 보고 왔다.
어느 순간, 줄이 생겼다.
나는 그 줄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생이지만, 동시에 마케팅 현장 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몸소 깨달았다.
직접 광고보다 호기심이 세다.
학원 설명회 안내문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절반도 안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약봉투는 달랐다. 뭔지 모르니까 받고 싶었다.
뭔지 모르니까 줄을 섰다.
마케터들이 수천만 원 들여 연구하는 것을 나는 교문 앞에서 15분 만에 증명했다.
형광펜이 들어 있었다.
녹색과 주황색, 두 가지.
"저 주황색 싫어요. 녹색으로 바꿔주세요."
초등학생의 소비자 주권 의식이 당당했다.
나는 박스를 뒤져 녹색을 찾아드렸다.
건네주다 보니 실수로 두 개가 딸려 간 적도 있었다.
그 아이는 멈추더니 돌아왔다.
"두 개 받았어요."
하나를 다시 내밀었다.
나는 잠깐 멍했다.
요즘 아이들이 어쩌고 하는 말을 종종 듣는데 — 이 아이는 달랐다.
봉투 하나를 돌려받으며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15분쯤 지났을 때, 박스 바닥이 보였다.
다 떨어졌다.
받으러 오는 아이들한테 "없어요"를 외치는 그 순간의 기분을 뭐라 설명할까.
인센티브도 없고 수당도 없다.
그냥 30분짜리 아르바이트생이 15분 만에 완판을 한 것이다.
장사꾼이 sold out을 맞이할 때의 그 쾌감
비록 내 물건도 아니고 내 매출도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교문 앞에서 맛봤다.
일찍 집에 갈 수 있다는 보너스까지 얹혀서.
어제는 경찰 소환 위기였고, 오늘은 완판이었다.
초등학교 장소, 같은 박스, 같은 사람이 나눠줌.
그런데 완전히 다른 하루.
나는 자전거를 끌며 생각했다.
이게 인생이 아닐까.
같은 일을 해도 어느 날은 혼나고 어느 날은 줄이 서고.
그 사이에서 내일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오늘 괜찮았던 기억 하나면 충분하다.
어제의 트라우마를 오늘의 완판이 덮어주는 것처럼.
아이 하나가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별것 아닌 한 마디였다.
그런데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제 박스에 던져지던 봉투들이, 오늘은 줄 서서 받아가는 봉투가 되었다.
3월의 전단지 배부 알바는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과연 내년 3월에도 지원할 것인가.
글쎄.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약봉투 아이디어를 낸 원장님 — 그분은 마케팅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앞으로 전단지를 받을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이걸 나눠준 사람은 교문 앞에서 얼마나 많은 눈치를 봤을까.
얼마나 많은 자존감이 깎여 나갔을까.
그리고 혹시 오늘 같은 날이었다면 — 얼마나 뿌듯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