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열면
작가의 말
문을 열기 전에는 언제나 잠깐 멈춘다.
비번을 누르고, 손잡이를 잡고, 그다음 딱 0.5초. 그 찰나에 나는 언제나 이 방이 비어 있기를 빈다. 빈방이어야 청소를 할 수 있고, 청소를 해야 일이 되고, 일이 되어야 돈이 된다. 그런 실용적인 이유로 빈방을 원하는 건데, 막상 문이 열렸을 때 방이 비어 있으면 이상하게 허전하다.
고시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2년이 됐다. 그사이 나는 수십 개의 문을 열고 닫았다. 대부분의 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퇴실한 자리, 비워진 냄새, 누군가 살았다는 흔적만 남긴 방.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 문 뒤에 사람이 있었다.
이 에세이들은 그 어쩌다 한 번의 이야기다.
2026년 봄
첫 번째
빈방인 줄 알았습니다
고시원 방 번호 체크는 내 방식이 있다.
원장님이 카톡으로 보내준 목록을 보면서, 비번을 하나하나 눌러보는 것이다. 비번이 맞으면 삑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린다. 열리면 빈방. 안 열리면 입실 중. 간단하다.
그날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507호, 510호, 515호. 삑삑삑. 문을 열고, 훑어보고, 닫고. 리듬이 붙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처럼 몸이 먼저 기억하는 동작이 됐다.
그런데 517호였다.
비번을 눌렀다. 삑. 문이 열렸다.
빈방이어야 했다. 원장님 목록에 있는 방이었다. 퇴실 완료된 방.
그런데 방 안에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청년.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하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로 굳었다.
0.5초짜리 침묵이 3초쯤으로 늘어났다.
청년이 먼저 말했다. "아..."라는 소리였는지, 아니면 그냥 숨을 내쉰 건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아..."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같이 놀랐다.
나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복도에 서서 심장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원장님께 카톡을 보냈다.
507.510입실함. 517입실. 515입실함
비번체크하는데 입실한 분이 계셔서 깜작 놀랐어요
원장님 답장이 왔다. "아... 죄송해요. 말씀드릴걸."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혼자 웃었다. 놀란 것도 나고, 놀란 것도 청년이었다. 우리 둘 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 원장님이 죄송하다고 했다.
나중에 원장님이 알려줬다. 510호, 515호 새 입실자들이 병원 실습을 나온 대학생들이라고.
병원 실습생들. 아마 간호학과 아니면 의학 관련 학생들일 것이다. 낮에는 병원에서 실습하고, 밤에는 이 작은 방으로 돌아오는 삶. 고시원 방 하나에 짐을 풀고, 내일의 실습을 준비하는 스무 살.
517호 청년도 그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교재였을까, 실습 노트였을까—아주머니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 0.5초 동안 청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둑인가? 관리인인가? 아니면 그냥, 누구지?
집에 오는 길에 자전거를 타면서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
청년의 눈. 반 정도 놀라고, 반 정도는 "또 이런 일이 생겼네" 하는 체념 같은 것이 섞인 눈.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프라이버시가 얇은 곳. 벽도 얇고, 문도 얇고, 내 공간과 남의 공간의 경계도 얇은 곳.
나는 그 경계를 침범한 사람이었다. 실수로. 직업적으로. 그러나 어쨌든.
다음부터는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번이 맞아도, 목록에 있어도, 혹시 모르니까. 문 앞에서 0.5초가 아니라 1초를 서 있어야겠다.
그 1초가 누군가의 오후를 지켜줄 수 있을 테니.
두 번째
죄송해요, 말씀드릴걸
— 원장님
원장님은 카톡을 아침 여덟 시에도 보내고, 밤 열 시에도 보낸다.
처음에는 그게 좀 부담스러웠다. 이 분 혹시 일 욕심이 많은 건가, 아니면 나한테 너무 의존하는 건가. 그런데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됐다. 원장님도 그냥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시원이 그런 곳이다. 아침도 저녁도 없이 크고 작은 일이 끊이지 않는 곳.
그리고 원장님은 언제나 "감사합니다"와 "죄송해요"를 세트로 쓴다.
그날의 "죄송해요"는 조금 특별했다.
내가 517호 문을 열었다가 입실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을 때, 원장님은 자기가 미리 말해줬어야 한다고 했다. 퇴실 목록을 보내주면서 입실 완료된 방을 빼줬어야 하는데, 깜박했다고.
"죄송해요"라는 말이 카톡 화면에 떴을 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사실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었다. 청년도 놀랐고 나도 놀랐지만, 문을 바로 닫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데 원장님이 "죄송해요"라고 말해줌으로써, 그 어색함이 어느 쪽의 잘못도 아닌 그냥 해프닝이 됐다.
원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분이 나보다 연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경험이 많은 어른일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나보다 한참 어린 분이었다. 팔에 무리가 생겨서 고생하면서도, 배관 교체를 오빠한테 부탁하면서도, 혼자 이 많은 방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카톡이 왔다.
팔이 잘 낫지를 않아서 우울하네요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우애가 좋으시네요"라고 했다. 오빠가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엉뚱한 답이었는데, 원장님은 그냥 넘어가 줬다.
같이 일한 2년 동안, 원장님이 나한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청소 날을 깜박했을 때도, 밀대가 부러져서 쓸 수 없게 됐을 때도, 후각이 둔해서 냄새를 제대로 못 맡았을 때도. 언제나 "감사합니다"와 "죄송해요" 사이 어딘가에서 넘어갔다.
그 넓이가 가끔 놀랍다.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일이 아니라 관계라는 걸, 나는 고시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배웠다. 일은 배우면 된다. 관계는 타고난 부분이 있다. 원장님은 타고난 쪽이었다.
그날 저녁, 원장님이 정산을 보내왔다. 카톡으로 짧게 메시지도 달렸다.
실장님 계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 좋은 저녁 되세요
나는 핸드폰을 들고 한동안 그 문장을 봤다.
"실장님"이라고 불린다. 나는 그냥 청소 아르바이트생인데. 하지만 원장님은 언제나 실장님이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그랬다.
호칭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나는 실장님이라고 불리면서, 조금씩 실장님처럼 행동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방 상태를 꼼꼼히 사진 찍고, 냄새 원인을 분석하고, 이거 버릴까요 물어보고.
그건 아르바이트생의 태도가 아니라 실장의 태도다.
원장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세 번째
병원 실습생들의 방
— 고시원 5층에 봄이 왔다
나는 방을 청소하면서 그 방에 살았던 사람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직접 보는 것들로 퍼즐을 맞추는 것이다. 방수 매트리스 커버에 남은 자국, 화장실 하수구에 걸린 머리카락의 색깔, 창가에 쌓인 결로. 이런 것들이 힌트가 된다.
예전에 청소한 방에서 긴 갈색 머리카락이 하수구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방 냄새는 영락없이 남자 냄새였다. 원장님께 카톡을 보냈더니, 방에서 친구를 몰래 데려와서 소란을 피웠던 청년이었다고 했다. 입주자와 다른 사람의 흔적이 한 방에 섞여 있던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날 마주친 청년들은 달랐다.
원장님 말로는 병원 실습을 나온 대학생들이라고 했다. 아마 간호학과나 의대 학생들일 것이다. 낮에는 병원 어딘가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긴장한 채로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이 작은 고시원 방으로 돌아오는 스무 살들.
방문을 열었을 때 청년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놀란 눈. 짧은 침묵. 그리고 내가 문을 닫자 복도에는 다시 고요가 왔다.
그 청년은 지금 무엇을 공부하고 있었을까.
나도 한때 공부를 했다.
지금도 한다. 사회복지사 과정을 다니고, 비폭력대화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다만 나의 공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종류가 아니라 복도를 걷고 방문을 열고 하수구를 들여다보면서 하는 종류다.
어떤 공부가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 청년이 언젠가 병원에서 환자 옆에 앉게 됐을 때, 오늘 저녁 이 좁은 방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그 손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고시원 복도에서 방문을 열고 닫으면서 사람들의 흔적을 치우는 이 일이—언젠가 내가 쓸 글의 바탕이 될 것이다.
원장님과 카톡으로 그 얘기를 나눴다.
학생인가요? 젊던데요
네 다 병원실습 대학생들이요
3월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 입주자들이 들어오는 계절. 원장님이 "3월은 들고 나고 가 많아서"라고 했다. 고시원도 봄이 오면 들썩인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봄바람이 등을 밀었다. 오늘 마주친 청년의 눈이 자꾸 생각났다.
놀란 눈. 그리고 금방 수습한 눈.
그 나이에 이미 당황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아마 병원 실습이 가르쳐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좁은 방에서 혼자 살며 익힌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괜찮아 보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네 번째
방 번호와 비번 사이
— 이 일을 2년째 하고 있다
고시원 방에는 번호가 있고, 번호마다 비번이 있다.
원장님이 퇴실한 방 목록을 보내줄 때마다 나는 작은 표를 머릿속에 그린다. 507호 1111. 510호 0308. 518호 0317. 숫자들이 방의 이름이 되고, 비번이 그 방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
그런데 비번을 알아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방이 있다. 입실 완료된 방.
나는 그것을 가끔 잊는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방을 그냥 공간으로 봤다.
비어 있는 공간. 청소해야 하는 공간. 다음 사람이 들어올 공간.
지금은 다르게 본다. 방은 공간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현재이기도 하다. 퇴실한 방도 그 사람이 살았던 시간의 잔해를 담고 있고, 새로 입실한 방은 아직 짐도 다 풀지 못한 삶의 시작을 담고 있다.
517호 문을 열었을 때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것은 내가 공간으로 생각한 방이 실은 현재진행형의 삶이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일의 재미는 반복 속에서 예외를 만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날은 똑같다.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고, 청소하고, 사진 찍고, 카톡으로 보고한다. 화장실 냄새, 결로, 곰팡이, 하수구. 패턴이 있다. 예측 가능한 일들.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택배 박스에서 삐 소리가 난다거나, 방수 커버에서 생각지 못한 털이 나온다거나, 문을 열었더니 사람이 있다거나.
그 예외들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원장님이 카톡으로. "실장님 계셔서 너무 감사하네요"라고.
나는 "저두 좋으신 원장님 밑에서 일해서 행복해요"라고 답했다.
남편이 그 카톡을 보고 '반띵 3만 원 준다'라고 했다.
일 따라갔다가 외식비 벌었으니까.
우리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 일하고 저녁 외식. 이것도 이 아르바이트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방 번호와 비번 사이에는 그 방에 사는 사람의 일상이 있다.
나는 그 일상을 잠깐씩 스치고 지나간다. 청소라는 이름으로, 실장이라는 호칭으로.
2년이 지났다. 수십 개의 방을 열었다. 대부분은 비어 있었고, 가끔은 비어 있지 않았다.
비어 있지 않은 방을 만났을 때 나는 배운다. 이 일이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사는 공간을 관리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 1초가 아직도 나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