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피는 달, 밤에 피는 달

달맞이꽃이 낮과 밤이 따로 있다고!


새벽 5시, 나는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자판을 두들기며 글자를 새겨나갔다.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나만의 세계가 펼쳐졌다.

문득 창밖을 보니 아파트 건너편에서 누군가 불을 켜고 있었다.

나처럼 새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괜히 반가웠다.



강의를 통해서 달맞이꽃에 대해 알게 됐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종류의 꽃이 있다는 것.

하나는 낮에 피고, 하나는 밤에 핀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꽃말이 '자유로운 마음'과 '은밀한 연애'라는 것.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나와 그 건너편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두 개의 시간표


나는 예전에는 확실히 밤달맞이꽃 인간이었다


낮에는 마치 시든 꽃처럼 축 늘어져 있다가, 해가 지면 비로소 생기를 찾는다.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렇게 밤늦게까지 깨어있어? 건강에 안 좋잖아."


하지만 나에게 밤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나만의 성전이다.


고요한 밤공기 속에서 나는 진짜 나를 만난다.


낮 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이 꽃잎처럼 펼쳐지고, 머릿속에 맴돌던 아이디어들이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반면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 9시만 되면 하품을 연발하며. 밤 9시 줌수업을 들으며 잠이 들 때도 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계획을 세우는 시간, 오전의 맑은 정신으로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


나의 새벽 시간이 소중했다.



편견이라는 이름의 폭력


우리 사회는 낮달맞이꽃 편향적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서구 속담이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밤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불규칙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다.


대학 시절, 교수님들은 항상 말했다. "새벽에 공부해야 머리에 잘 들어간다."


아무도 "밤에 공부하는 것도 괜찮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려고 수없이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에 빠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게 아니었다.


새벽 2시에 쓴 일기, 새벽 3시에 독서, 새벽 4시에 조용히 듣는 음악들.


그것들은 낮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밤이 주는 고요함과 적막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들이다.



과학이 알려준 진실


얼마 전 크로노타입에 관한 글을 읽었다.


우리 몸에는 각자 다른 생체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습관이나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 생물학적 차이라고 했다.


인구의 25%는 확실한 아침형, 25%는 확실한 저녁형,


나머지 50%는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다고 한다.


즉, 네 명 중 한 명은 태생적으로 밤달맞이꽃 인간인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나이에 따라 이 성향이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10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저녁형으로 변하고,


20대 초반에 가장 극단적인 저녁형이 된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다시 아침형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제야 이해했다. 왜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 조회시간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


왜 20대 초반의 나는 새벽까지 깨어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는지.


그것은 내 몸이 그 시간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찾아서


중요한 것은 남의 시간표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것이다.


내가 가장 활기차고 창조적인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어떤 이는


자신의 밤 시간을 좋아한다


세상의 소음이 잠잠해지고, 나만의 고요한 시간이 펼쳐진다.


그 시간에 가장 솔직한 글을 쓰고, 가장 진실한 그림을 그린다.


낮에는 절대 나오지 않을 아이디어들이 별처럼 반짝인다.



어떤 이는


자신의 새벽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다고 한다.


새벽 공기의 상쾌함, 조용한 집에서의 집중,


체계적으로 하루를 계획하는 시간. 그것들이 소중한 것이다.



두 꽃의 조화


세상이 온전히 돌아가려면 두 종류의 달맞이꽃이 모두 필요하다.


낮달맞이꽃 인간들이 사회의 기본 틀을 만들고 유지한다면,


밤달맞이꽃 인간들은 그 틀에 색깔과 의미를 더한다.


24시간 응급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새벽 배송을 담당하는 기사,


심야 라디오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DJ. 이들이 없다면 우리의 밤은 얼마나 위험하고 외로울까?


반대로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은행, 정시에 시작하는 수업,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관공서.


이런 것들이 없다면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누가 유지할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깨어 있지만, 결국 같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당신은 어떤 달맞이꽃인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달맞이꽃인가요?


아침 햇살과 함께 '자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낮달맞이꽃일까요?


아니면 깊은 밤의 고요함 속에서 '은밀한 연애'를 속삭이는 밤달맞이꽃일까요?


어떤 꽃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그 시간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온전히 당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억지로 다른 사람의 시간표에 맞추려 하지 마세요. 당신의 몸이 원하는 리듬을 믿어보세요.


당신이 가장 집중할 수 있고, 가장 창조적이며, 가장 행복한 그 시간이 바로 당신의 시간입니다.



새벽 5시,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창밖 건너편 아파트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켜져 있었다.


이제 그 불빛이 반갑다.


각자의 시간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니까.


당신도 지금, 당신만의 시간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기를 바랍니다.


화려한 밤에 피는 장미는 아니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히 맞이해 본다


밤이든 낮이든

브런치님들도

당신만의 시간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시길..


다운로드 (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벽 5시, 민주주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