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꽃으로 태어나고 싶어?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서로를 알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매기와 나는 몇 번의 모임에서 마주쳤지만, 그녀는 항상 같은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렸고, 나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멀리서 그들의 활기찬 대화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페이스북을 스크롤하다가 매기의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댓글에는 "함께 자전거 탈 친구를 찾고 있어요"라는 글이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메신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도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요. 함께 타도 될까요?"
놀랍게도 매기는 금세 답장을 보내왔다. "물론이죠! 이번 주말에 오산천으로 가려고 하는데 함께 가실래요?"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그룹에 합류할 수 있었다. 매기, 인도에서 온 아치, 그리고 나.
우리 세 명은 주말마다 다른 코스를 탐험했다. 오산천의 시원한 바람, 동탄 호수공원의 잔잔한 물결,
기흥저수지의 고요한 아침 안개까지. 페달을 밟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고,
우리의 우정도 깊어져 갔다.
아치는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꾼이었다.
인도의 다채로운 축제 이야기부터 한국 음식에 대한 솔직한 감상까지,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라이딩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매기는 처음에 느꼈던 것과 달리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언어의 벽을 넘어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갔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항상 빨리 지나간다.
2년 전, 아치의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 라이딩 날, 우리는 평소보다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이 시간이 끝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굿바이가 아니라 씨 유 어게인이야, " 아치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이별이 얼마나 길어질지를.
아치가 떠난 후에도 매기와 나는 계속 자전거를 탔다. 둘만의 라이딩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서로의 고민과 꿈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매기도 곧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더욱 소중하게 매 순간을 담으려 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사진을 많이 찍자." 매기가 카메라를 들고 말했다.
그날 우리가 찾은 곳은 작은 꽃밭이 있는 공원이었다.
장미가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었고, 양귀비꽃이 하늘하늘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노란 금계국도 만발해서 마치 노란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았다.
"정말 예쁘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그때 지나가시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보시더니 다가오셨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이렇게 예쁜 꽃들 사이에서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매기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할머니는 우리를 꽃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앉히시더니,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보신 분인지 구도도 완벽하게 잡아주셨다.
"젊을 때 이런 추억이 정말 소중한 거예요.
나중에 보면 이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게 될 거예요." 할머니가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다.
사진을 찍고 나서 천천히 걸으며 꽃들을 구경하는데, 장미 정원 한쪽에 작은 팻말이 눈에 띄었다.
"이젠 내가 꽃필 차례"
그 글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매기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말이 우리에게 하는 말 같지 않아?" 매기가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아.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이제는 각자의 길에서 꽃을 피워야 할 때인 것 같아."
우리는 그 팻말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이별의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매기가 떠나기 전 마지막 밤, 우리는 아파트 옥상에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는 이제 뭘 하고 싶어?" 매기가 물었다.
"음... 자전거 동호회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야.
우리처럼 처음엔 서먹했지만 자전거를 통해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야.
그리고 사진도 더 배워보고 싶어. 오늘 할머니처럼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을 담아주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아."
"정말 좋은 생각이야!
나도 고향에 돌아가면 한국에서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어.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일도 하고, 여기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도 많이 들려줄 거야."
우리는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이별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나는 자전거를 탔다.
오산천을 달렸다.
석양이 강물에 반짝이고, 바람이 뺨을 스치는 그 순간, 문득 그 팻말이 떠올랐다.
"이젠 내가 꽃필 차례"
정말 그랬다. 매기와 아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씨앗이 되어,
이제 내 안에서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별은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이었다.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이 거름이 되어,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내일도 나는 페달을 밟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길을 달리며, 내 마음속에 피어나는 꽃들을 더욱 활짝 피워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매기와 아치를 다시 만날 때, 서로가 얼마나 아름답게 꽃을 피웠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바퀴는 계속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도 계속 이어진다.
이젠 내가 꽃필 차례. 그리고 그 꽃은 지금, 여기서 활짝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