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특례시 콘서트 안전봉사 이야기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봉사 신청 알림.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봉사가 더욱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늘 망설였다. 반나절만 하면 되니까, 3시 40분까지 집합이니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하루가 내게 얼마나 큰 울림을 줄지 그때는 몰랐다.
"오늘의 미션은 안전!"
브리핑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태원 사건이 떠올랐다. 서로 밀치고 밀려 일어난 그 참담한 인재를. 병목현상으로 스러져간 소중한 생명들
오늘 우리가 서야 할 자리의 의미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깨달았다.
콘서트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린 사람들도 있었다.
언덕 위 잔디에 쳐진 노란 끈은 인파 앞에서 무력했다. 4천 개의 의자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축구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안전선 뒤로, 옆으로 하나둘씩 스며들었다.
서 있다가 음악에 흥분해서 한 사람이 넘어지면? 언덕이라 더욱 위험할 수 있었다.
안전거리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좌석을 차지하지 못한 분들의 돗자리와 캠핑의자가
도로를 점령했지만,
그들의 설렘만은 막을 수 없었다.
"소방의용대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그 맑은 눈높이에 맞춰 답했다.
"소방관을 돕는 일을 해."
과연 적절한 설명이었을까? 하지만 그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졌다.
소방의용대에 입소한 지 1년이 넘었다. 2달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하고, 심폐소생술과 안전교육을 받고,
봉사를 하고. 반월동에 불이 났을 때는 현장으로 달려가 불을 끄는 소방관들에게 물을 제공하고,
제대로 식사도 못 할 때는 라면과 커피도 건넸다.
진짜로 현장에서 불을 끄고 나오신 소방관님의 지친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찡했다.
소방관 옷만 해도 엄청 무거운데, 뜨거운 불 속으로 목숨을 담보로 뛰어드는 그 용기. 정말 멋지고 대단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을 도울 수 있어서,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오늘의 봉사는 단순히 보면 안전가이드 옆에 서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시민들을 지켜보는 안전요원의 역할이었다. 경찰들도 많이 배치되어 있었고, 구급차도 3대나 대기 중이었다.
그냥 시민으로 봤을 때는 무심코 봤던 일들이, 내가 안전요원으로 근무해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보였다
스태프들은 안전에 유의하며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콘서트 가수가 아닌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고 몸과 리듬이 한 몸이 되는 시민, 치킨과 간식을 먹으러 오신 분, 동네 한 바퀴 돌듯 나오신 분, 가족과 함께 콘서트를 즐기시는 분들.
몇 시간을 서 있으려니 다리가 아팠다. 주황색 조끼가 아주 밝아서 우리는 눈에 확 띄었고,
딴짓은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저녁 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을 찾아가는데 왜 이리 멀리 느껴지던지.
교대를 해야 해서 식사를 하고 바로 나와 다시 라인을 지켰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에 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다음날 아침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 왔다
그 사진을 보자 내 에너지는 바로 충전되었다.
1만 5천 명의 시민들이 안전하게 여름밤의 축제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그 뒤에는 수많은 손길들이 있었다.
경찰, 구급대원, 스태프, 그리고 우리 소방의용대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묵묵히 해낸 하루.
화성특례시 출범 원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콘서트. 그 특별함 속에는 시민들의 웃음과 박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안전을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정성이 있었다.
고단했지만 뿌듯했던 하루. 내가 서 있던 그 자리가, 내가 입었던 그 주황색 조끼가 얼마나 소중한 의미였는지 이제야 안다.
봉사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하고 따뜻한 세상의 한 조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소중한 한 조각이 되었다.
응원의 글로 피로가 풀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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