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카드값 천만 원의 진실



카드 명세서를 열었다가 눈을 의심했다.

천만 원.

아버지 팔순 잔치를 치르면서 '좀 나오겠다' 각오는 했다. 하지만 천만 원은 각오 밖의 숫자였다.

내 심장이 일단 한 박자 쉬어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명세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잔치 비용, 잔치 비용, 잔치 비용... 그리고 등장한 두 줄의 수상한 항목. 삼성 최신폰 두 대.

아들 녀석이었다.

새로 출시된 삼성폰으로 자기 것을 업그레이드하면서, 혼자 바꾸기 미안했는지 내 것까지 커플로 바꿔놓은 것이다.

나는 항상 자급폰으로 유행 지난 것, 싼 것만 써왔다.

차 패드에 올려놓아도 무선충전이 되는 세상에 혼자 케이블을 꽂고 살았다.

그래도 불평 없이 살았다.

내가 노트북 값만 한 핸드폰의 기능을 반의반도 못 쓰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남편을 설득해서 내 폰을 바꿔줬다.

명세서를 덮으며 생각했다.

이게 효도구나.

혼나야 하는데 혼낼 수가 없었다.

팔순 잔치 치러놓고 새 폰까지 안겨준 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하나였다.

"고맙다."

천만 원짜리 고마움이었다.


2편 — 맨날 논다

남편은 주말마다 같은 말을 한다.

"넌 좋겠다. 맨날 놀아서."

나는 토요일 아침 가방을 메고, 남편은 소파에 누워 그 말을 한다.

누가 놀고 있는 건지 묻고 싶지만 참는다.

결혼 생활의 지혜란 참는 것에서 시작하니까.

"직장 다닐 때가 좋은 거야." 내가 말한다.

"늙어서 돈도 못 벌면 찬밥 된다. 지금이 좋을 때다."

"넌 전생에 무슨 복이 많아서 맨날 노냐."

주말 부부인 남편은 나를 부러워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부러워할 만도 하다.

나는 듣고 싶은 강의만 듣는다.

사회학과 미술을 연결한 수업, 평생학습관 강좌, 도서관 무료 강의. 수강료는 1시간에 천 원꼴이다.

천 원. 커피 한 잔 값도 안 된다.

남편 말대로 나는 복이 많은 걸지도 모른다.

다만 그 복은 전생에서 온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골라 온 것이다.

듣고 싶은 수업을 찾아다니고, 저렴한 강의를 발굴하고, 아침마다 가방을 메는 수고로 쌓은 복.

남편이 다음 주말에도 또 말할 것이다.

"넌 좋겠다, 맨날 놀아서."

그때도 나는 가방을 메고 나가면서 대답할 것이다.

"응, 좋아."

틀린 말이 아니니까.


3편 — 83세 옆자리

오늘 저녁 7시 수업에 아는 작품이 나왔다.

"어, 나 이거 배운 건데."

작게 중얼거렸는데 옆자리 어르신이 고개를 돌리셨다.

올해 여든셋이라고 하셨다.

수업 때마다 맨 앞줄에 앉으시는 분이다.

나보다 필기도 꼼꼼하시다.

사회학과 미술 작품을 연결하는 강의.

앞으로 30년은 더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혼자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여든셋 어르신을 보고 있으면 그 계산이 틀린 것도 아닌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 잠깐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그런데 그 생각은 금방 사라진다.

일주일에 세 강좌씩 겹쳐 듣는 수강생도 있다.

나와 같은 강의를 여러 개 함께 듣는 얼굴들이 늘었다.

우리는 따로 약속하지 않았는데 자꾸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시험 없는 수업이라 더 재미있는 걸지도 모른다.

잘하고 못하고를 점수로 가르지 않으니 그냥 좋아서 오는 사람들만 남는다.

여든셋도, 나도, 그냥 좋아서 온다.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님이 이 수업을 들으셨다면 딱 이 문장을 쓰셨을 것이다.


4편 — 글만 쓰는 사람의 4월

4월부터 어려운 강좌를 신청했다.

예습이 필요한 수업이다.

따라가려면 미리 공부해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예습은 안 하고.

이건 뭐지, 싶지만 이게 나다.

새 핸드폰이 생겼고, 카드값은 천만 원이 넘었고, 남편은 또 "맨날 논다"라고 할 것이고, 83세 어르신은 오늘도 맨 앞줄에 앉아 계실 것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강의를 듣고, 기쁨을 느끼고, 글을 쓴다.

평생학습이란 아마 이런 것일 테다.

죽는 날까지 새로운 것이 쏟아지니 배움도 끝이 없다.

나의 배움은 언제까지일까 묻다가, 결국 대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끝날 때까지.

4월 수업,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못 버티면 또 글감이 생긴다.

어차피 나는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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