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수록 비어 가는 사람
처음에는 잘 가르치고 싶어서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남의 강의를 들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커지는데, 내 부족함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또 들었다.
채우려고. 그런데 채울수록 더 비어 보였다.
그래서 또 들었다.
언젠가부터 강의를 듣는 이유가 바뀌어 있었다.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듣고 있었다.
글도 그랬다.
처음엔 쓸 생각이 없었다.
책을 낸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데 어쩌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글이 쌓였고, 어느새 책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다.
글이 늘수록, 글이 나빠지고 있다.
처음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어딘가 생생하다.
날것의 냄새가 난다.
잘 쓴 건 아닌데 뭔가 살아있다.
그런데 요즘 글은 다르다.
반듯하게 쓰려고 하면 할수록 텅 빈 느낌이 난다.
문장은 길어졌는데 하고 싶은 말이 사라지고 있다.
책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쓰다 보면, 걸릴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분량을 맞추려고 쓰는 건지, 진짜로 쓰고 싶어서 쓰는 건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작가라는 말이 어색하다.
나는 작가인가.
그냥 글 쓰는 사람인가.
아니면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인가.
아니면 그냥, 무언가 남기고 싶은 사람인가.
모르겠다.
글을 쓰면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올릴수록 공허해진다.
강의를 들으면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들을수록 부족함이 커진다.
이 공허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어쩌면 이게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다 채웠다고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쓸 게 없어지는 것.
항상 부족하고 항상 모자란 느낌이 있어야 다음 문장이 나오는 것.
공허함이 엔진인 글쓰기.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괴로운가.
아니다. 여전히 괴롭다.
오늘도 브런치 창을 열었다.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써야 할 것 같아서.
그 차이를 알면서도 손가락이 움직인다.
이게 성실함인지 강박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이 공허함을 글로 쓰고 있는 나는, 아직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걸로 오늘은 충분하다고, 충분하지 않다고, 동시에 생각하면서 저장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