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비용 <당시 환율 기준: 약 34억 원>
사실 나는 그 앞을 몇 번 지나쳤다.
청계천 입구, 붉고 커다란 나선형 조형물.
주변 사람들이 흔히 '골뱅이'라 부르는 것.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두 번째도 그냥 지나쳤다.
세 번째쯤엔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저거 35억이래."
발이 멈췄다.
35억.
잠깐 계산을 해봤다. 내가 알바를 처음 했을 때 최저시급이 9,860원이었다.
하루 여섯 시간, 한 달 스물 닷새 일하면 손에 쥐는 돈이 약 148만 원.
35억을 그 월급으로 모으려면... 대략 197년이다.
나는 현재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게 된다.
그런 돈이, 저 빨간 달팽이 한 마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이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공공미술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
그의 작품이 도시 곳곳에 세워지고, 관광 명소가 되고, 도시의 얼굴이 된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다.
그것에 비하면 청계천 스프링은 오히려 저렴한 편(?)이라고 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35억이 갑자기 좀... 귀여워 보였다.
이것이 올덴버그가 나를 세뇌한 것인지, 아니면 숫자의 마비 효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잠깐.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35억이면 경기도 어딘가의 조그만 공공도서관 하나를 지을 수 있다.
저소득 가정 아이들 수백 명에게 1년 치 교육비를 댈 수 있다.
혹은 내가 일했던 고시원 같은 곳에서 힘겹게 사는 청년들의 월세를 몇 년간 지원할 수도 있다.
저 나선형 철 덩어리 한 개 값으로.
이렇게 생각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예술이 밥을 먹여주냐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 다른 질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다면 밥만 먹고사는 도시는, 살 만한 곳인가?
생각해 보면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짓을 해왔다.
밥보다 그림을 먼저 그린 종족. 동굴 벽에 들소를 새기던 사람들은, 먹고사는 게 해결됐기 때문에 예술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먹고살기도 빠듯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피라미드를 세웠다.
성당을 쌓아 올렸다.
그 비용을 당대의 화폐로 환산하면, 아마 피라미드 하나에 현대 복지 예산 몇 연차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인류의 유산'이라 부른다.
사치라 부르지 않는다.
물론 클리오파트라 시대와 지금을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다.
그때는 민주적 절차도 없었고, 세금을 어디에 쓰는지 시민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35억은 시민의 세금이고, 그 선택에 대해 묻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러니까 문제는 '예술에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 예술이 그 값어치를 하는가'이다.
나는 다시 그 앞에 서봤다.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외국인 커플이 스프링을 배경으로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아이 하나가 "저게 뭐야?" 하고 묻자, 엄마가 "예술이야"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골뱅이' 앞에 서 있으니, 내가 청계천에 있다는 게 갑자기 실감이 났다.
콘크리트로 덮여 있던 하천이 복원됐다는 사실이, 저 조형물을 통해 시각적으로 고정되는 느낌.
아무것도 없었다면 나는 그냥 물가를 걸으며 스쳐 지나갔겠지.
그런데 저 붉은 나선 덕분에, 여기가 어딘지 기억하게 된다.
그게 예술의 역할이라면, 35억은 기억을 사는 값이다.
결론을 내리려다 멈췄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이 35억짜리냐'는 질문에 답할 자격이 없다.
미술 전공도 아니고, 공공미술 정책을 깊이 공부한 것도 아니다.
다만 골뱅이 앞에 서서, 잠깐 생각이 많아진 사람일 뿐이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35억이라는 숫자를 듣기 전과 후, 나는 그 조형물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고, 후에는 발이 멈췄다.
이것이 이 작품이 내게 준 첫 번째 효과다.
비싸다는 사실이 나를 멈추게 했고, 멈춰서 보니 뭔가 생각이 생겼다.
어쩌면 클래스 올덴버그는 그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격도 작품의 일부라는 것을.
그렇다면 35억은, 어쩌면 아주 영리한 값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그 앞을 지나친다.
하지만 이제는, 잠깐 멈춘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뒤늦게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저 조형물의 이름이 '스프링(Spring)'이라는 것을.
처음엔 그냥 영어 이름이라고 넘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단어 하나에 세 가지 뜻이 동시에 들어 있었다.
봄(Spring). 용수철(Spring). 샘(Spring).
올덴버그는 이 세 가지 의미를 작품명에 동시에 담았다고 한다.
다슬기 껍질에서 형태를 가져왔고, 내부에는 DNA 리본을 설치해 청계천이라는 도시의 시작점에서 서울의 미래와 생명력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 이걸 알고 나니 갑자기 좀 억울해졌다.
나는 지금껏 '골뱅이'라고 불렀는데, 작가는 봄이고 샘이고 용수철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다. 청계천이 콘크리트 아래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 그 '다시 시작함'을 봄으로 읽은 것이다.
용수철은 눌렸다가 다시 튀어 오르는 힘.
오랫동안 덮여있던 하천이 되살아나는 탄성.
그리고 샘은 말 그대로 땅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물.
실제로 하단부에는 샘을 만들었고, 밤에는 조형물 앞 사각 연못에 원형 입구가 비쳐 보름달이 뜬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하나의 단어로 세 개의 이미지를 겹쳐놓은 셈이다.
봄, 튀어 오름, 솟아오르는 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은 형태가 다슬기다.
도시 한가운데에 자연을 끌어들인다는 의미로 다슬기라는 자연물을 소재로 사용했다.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생물. 다시 맑아진 청계천을 상징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생물이 또 있을까.
내부의 붉고 푸른 리본은 한복 옷고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도 했다.
부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이 모티프가 됐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조금 반성해야 할 것 같다.
골뱅이라고 흘려봤던 그것이, 사실은 봄이고 샘이고 옷고름이었다.
나는 35억짜리 작품 앞을 수십 번 지나치면서 이름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의미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골뱅이다.
공공미술의 숙명이 여기 있다.
미술관에서라면 옆에 작품 설명 패널이 있고, 도슨트가 있고,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그런데 청계천 입구에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 누가 멈춰 세워 "저것은 봄이자 샘이자 용수철입니다"라고 말해주겠는가.
그러니 이 작품의 진짜 문제는 가격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Spring'이 세 가지 뜻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처음으로 그 조형물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넨 기분이 들었다.
35억이 비싼 게 아니었다.
나의 무관심이 그 가치를 몰라봤을뿐
그의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