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드니즈 빌레르의 〈그림 그리는 젊은 여인〉을 보며
강의실 화면에 그림이 떴을 때, 나는 솔직히 감탄부터 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창가에 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깨진 창문 사이로 역광이 쏟아지고, 그 빛이 인물의 실루엣을 고요하게 감싼다.
수평의 창틀과 수직으로 곧게 앉은 인물.
신고전주의 특유의 매끄럽고 차분한 붓 터치. 어딜 봐도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런데 강사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이 그림, 원래는 다른 사람 것이었다고.
1801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오랫동안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시대 최고의 화가, 나폴레옹의 수석 화가, 신고전주의의 거장.
그 이름이 붙어 있으면 미술관에서 특별 대우를 받고, 비평가들은 앞다퉈 찬사를 쏟아낸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야 연구자들이 밝혀냈다. 이건 마리-드니즈 빌레르의 작품이라고.
그림은 단 한 획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평가는 달라졌다.
나는 그 순간 잠깐 멍했다. 그림이 달라진 게 아니다.
역광은 여전히 아름답고, 창틀의 구도는 여전히 안정적이고, 붓 터치는 여전히 매끄럽다. 달라진 건 단 하나, '누가 그렸느냐'는 이름표였다.
그런데 그 이름표 하나가 바뀌자, 미술사에서 잠시 빛을 잃었던 그림이다.
빌레르는 1774년에 태어났다. 그 시절 여성이 화가가 된다는 건, 지금으로 치면 어지간한 스펙으로는 꿈도 못 꿀 직업에 도전하는 것과 비슷했다. 왕립 아카데미에 여성은 입학이 제한되어 있었고, 살롱 전시에 출품할 수 있다 해도 '여성 화가의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다. 재능이 있어도 직업으로 삼기 어려웠다. 생계를 잇기도 어려웠고, 이름을 남기기는 더 어려웠다.
그러니 그녀의 그림이 더 유명한 남성 화가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통했던 것도 어쩌면 시대의 논리였을지 모른다. 좋은 그림이니 당연히 남자가 그렸겠지, 하는 그 무심한 가정. 그리고 그 가정이 굳어져 정설이 되고, 카탈로그에 인쇄되고, 강의실에서 수십 년간 반복된다.
그림 앞에서 나는 잠깐 나를 돌아봤다.
나는 똥손이다.
진심으로. 미술 시간이면 옆자리 친구 그림을 곁눈질하며 '왜 내 나무는 빗자루처럼 생겼을까' 고민하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릴 줄은 모른다. 감상하는 눈은 있는데 표현하는 손이 없다. 이 자리에 온 것도 그려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림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서 있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빌레르의 그림 앞에 서니 묘한 감정이 든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못 그리는데, 그녀는 재능이 있어도 제대로 인정을 못 받았다.
나는 손이 문제고, 그녀는 시대가 문제였다.
어느 쪽이 더 억울할까.
따지고 보면 비교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이 시대에 태어났으니 그림을 못 그려도 감상 강좌 하나 신청해서 이렇게 앉아 있을 수는 있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은 어디까지 왔을까. 화가가 되고 싶으면 될 수 있다.
아카데미도 살롱도 성별로 문을 닫지는 않는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빌레르의 그림이 이백 년이 지나도록 남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표의 문제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 않다.
누구의 성과인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누가 기획했고 누가 실행했는지.
이름이 붙는 방식은 여전히 공평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림 속 여성은 잠깐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스케치북을 든 채로, 붓을 멈춘 채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눈빛으로.
이백 년 넘게 다른 사람의 이름표를 달고 전시장 벽에 걸려 있다가, 이제야 제 이름을 되찾은 그림.
나는 그 눈빛이 '이제 알아봐 줘서 다행이야'인지, '진작 알아봤어야지'인지 잘 모르겠다.
강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나는 똥손이라 그림을 못 그리지만, 적어도 내가 쓴 글에는 내 이름이 붙는다.
그것만으로도 빌레르보다는 운이 좋은 시대에 태어난 셈이다.
그 작은 다행함을 곱씹으며, 오늘도 강의실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