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를 보며
강의실 화면에 그림이 떴을 때, 많이 봤던 그림
당연 카르바조의 작품이라 생각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피가 튄다.
칼이 목에 박혀있다.
두 여성은 지금 이 일을 해치우고 있다.
눈빛은 냉정하고, 손목에는 힘이 가득하다.
여기서 망설임 같은 건 없다.
이건 그냥 '강한 그림'이 아니다.
뭔가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캔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생동감이 넘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강사님의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그리고 들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593년생.
열일곱 살에 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아버지의 지인이자 스승이기도 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당시의 법정이란 피해자를 검증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피해자였음에도 오히려 세상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오래 견뎌야 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여자가 붓을 들었다.
그림 속 홀로페르네스의 얼굴, 목을 잘리는 그 남자의 얼굴에 타사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그것이 단순한 성서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건, 직접 보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카라바조의 유디트와 비교하면 더욱 확연하다.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살짝 찌푸린 얼굴로, 마치 불편한 일을 억지로 처리하는 것처럼 팔을 뻗어 칼을 댄다.
'나는 이걸 원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표정. 아름답고 주저하는 유디트다.
남성 화가가 상상한 유디트는 그랬다.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우아하고, 결연하면서도 여성스럽게. 어딘가 관객 즉 남성 관객을 의식한 구도다.
<카라바조의 유디트>
반면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망설이지 않는다.
두 팔이 힘차게 누르고 있다. 하녀도 함께 힘을 쓴다. 얼굴엔 결의만 있다.
이건 임무를 수행하는 눈빛이 아니라, 오래 참아온 무언가를 마침내 행사하는 눈빛이다. 그림에서 그 온도가 느껴진다. 그래서 생동감이 넘쳤던 거였구나. 이건 상상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캔버스에 새긴 감각.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그녀가 고객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여자의 영혼을 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걸 참고 또 참았으면, 편지에서까지 이렇게 선언해야 했을까.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
여러 나라에서 구매자가 나선 화가. 색채, 구성, 공간감 모두 탁월하다는 평.
이 모든 수식어가 그녀에게 붙기까지, 얼마나 많은 문이 닫혀 있었는지도 안다.
여성은 누드모델을 그릴 수도 없었고, 길드에서 자기 공방을 이끌기도 어려웠고, 결혼 후엔 그냥 남편 뒤에 서야 했던 시대. 그 안에서 그녀는 살아남았고, 그림을 남겼다.
어떤 평론가는 이 그림을 두고 "성폭력에 대한 복수심의 발현"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홀로페르네스를 소재로 한 그림은 남성 화가들도 수없이 그렸다는 거다.
아무도 그들에게 "트라우마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았다.
젠틸레스키가 여자였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그녀의 상처로 환원됐다.
그린 사람의 성별이 달라지면,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살아있었다. 사백 년이 지난 강의실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목을 자르는 손에서 떨림 하나 없이, 그녀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그 붓으로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박아 넣었다.
아무도 지워낼 수 없도록.
나도 브런치에 박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