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기둥 앞에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며

척추가 무너졌다.

이오니아식 기둥처럼 한때 반듯했을 그 기둥이, 금이 가고 쪼개진 채 몸통을 겨우 버티고 있다.

온몸에는 못이 박혔다.

흰 천으로 묶어놓은 몸은 의료용 코르셋에 갇혀 있다.

그런데 그녀의 눈은 울지 않는다.

무너진 게 척추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버스 사고로 박살 난 몸, 서른다섯 번의 수술, 끝나지 않는 통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배신.

그럼에도 그녀는 붓을 놓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에 거울을 달고,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내 글을 떠올렸다.

요즘 내 글이 자꾸 무너진다.

쓰고 나면 형편없어 보이고, 다시 읽으면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애써 쌓은 문장들이 와르르 내려앉는다.

이런 게 글이냐고, 이걸 누가 읽겠냐고, 나는 나에게 못을 박는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러면서도 또 쓰고 싶다는 것이다.

프리다도 그랬을 것이다.

붓을 들어봤자 무슨 소용인가, 이 몸으로 무엇을 그릴 수 있나.

그래도 그녀는 그렸다.

무너진 기둥을 그렸고, 못 박힌 자신을 그렸고, 그 고통을 기어이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놓았다.


지금 글이 형편없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글이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더 좋은 글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글의 부족함이 보인다는 것은, 이미 그 너머를 감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프리다의 기둥은 부서졌지만, 그녀는 그 부서진 기둥을 그림 속에 세웠다.

무너짐 자체가 작품이 되었다.

당신의 형편없는 글도,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그 문장도, 지금 이 순간의 솔직한 기록이다.

그것이 쌓이면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 어딘가에 못처럼 박힐 것이다.

아프게 가 아니라, 깊게.

무너진 채로도 계속 쓰는 것.

그게 작가다.

오늘도 써라.

형편없어도, 써라.